얼마 전 아침방송에 아기모델들이 나왔다. 앙증맞은 아기들이 귀엽고 예뻤지만 자신의 아기를 TV에 내보내려 경쟁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아기가 촬영장에서 더 방긋 웃으라며 마사지 하고, 새벽에 잠도 덜 깬 아이를 데리고 촬영장에 가는 모습이 극성맞아 보였다. 그 중 촬영을 하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엄마는 달려와 황급히 아기를 달래더니 울음을 그치자마자 촬영을 다시 시작했다. 엄마들은 아들, 딸을 대견해하며 ‘내 아이를 위해서’라 말한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바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관련 기사 준비로 영화 프로듀서를 만난 적이 있다. 취재원을 만나다보면 대부분 사무적인 태도로 이야기하고, 웃더라도 예의상 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어렵게 시간을 내 취재하는 중에도 귀찮아 하거나 사무적인 기색이 없었다. 영화를 얘기하는 내내 웃는 모습은 내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얼굴에 머금은 것은 그저 ‘웃음’이 아니라 ‘행복’이었다. ‘일’ 얘기를 하며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를 묻자 단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 답했다. 대학교 선택부터 직업까지 그녀는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해왔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선택, 스펙, 학점, 어학능력처럼 여태껏 내가 선택하고 계획한 일이 스스로 원한 것이었을까? 우린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채울 지 고민하기 보단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에 자신를 맞추고 주변에서 좋다는 것을 하며 시간을 쏟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하다보면 행복보단 피곤이 먼저 얼굴에 나타난다.

앞으로 많은 사람과 마주칠 것이다. 20대가 지나 30대가 되고 점점 나이가 들며 얼굴에 깊게 주름도 패일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때의 나를 만나든 행복을 발견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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