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의 장관, 교육감 등을 위시해 많은 이들이 불철주야 입시에 매달린 학교에 대고 ‘입시준비교육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도 그 입시 속에 자기 자녀를 내맡길 수밖에 없다.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입시연습을 시키지 말라고 빈말을 해왔을 뿐, 정작 고교생이 할 만한 공부, 수험생이 치를 만한 대입시를 만들지 못한 결과이다.

고교에서 할 만한 공부란 무엇인가? 그 핵심은 교육의 본질과 닿아있다. 교육에서 기초․기본 교육은 학습자의 성․계층․지역․종교 등 ‘어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균등하게’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심화․특수․전문 교육은 학습자의 흥미․ 적성․진로 등 ‘어떠한 차이에 따라 알맞게’ 교육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소질과 적성이 일찍 드러나고 전성기가 일찍 도래하는 예술 체육은 중학교부터, 공부가 넓어지고 심화되는 고교부터는 어느 정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진로를 잘 모르는 학생도 최소한 싫어하고, 잘 못하고, 할 필요가 없는 공부는 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고교는 교내 학생간 격차가 큰 평준화나, 학교간 격차가 심한 비평준화로 나뉘고, 그 공부는 문이과식으로 양분된다. 학교와 학생을 가르는 기준은 주로 국영수 성적이다. 절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면 서로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전문고가 상당히 무너진 현실을 반영하여 고교는 진로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교육과정을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안한 진로 집중과정에서는 문과는 인문․사회․경상․국제로, 이과는 수리정보․화학생물․물리지학으로, 예술은 미술디자인․음악․연극영상․문화콘텐츠로, 진학할 대학계열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학생에 대한 진로지도의 강화, 풍성한 교과목을 제공하기 위한 교사의 복수자격화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내 학교간에 협력과 역할분담을 통해 소수 학생이 지망하는 예술, 체육 등의 집중과정을 제공하는 중점학교를 더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대안은 평준화․비평준화를 넘어 ‘고교교육의 진로화’를 이루는 것이다.

고교 공부가 획일적인 것은 대입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입시와 대학이 고교에서 공부한 것을 존중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대학들은 수시․정시, 일반․특별 전형 등 다양성을 갖추었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주로 국영수, 문이과 중심의 획일적인 잣대로 수험생들을 선발․모집한다. 향후 고교에서 공부하고 경험할 것이 국영수, 문이과만 아니고, 대학 공부나 사회생활에서도 그것이 핵심이 아닐 수 있는데, 대학들은 여기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 입시가 국영수만 우대하고, 문이과 두 곳으로만 가라고 학생들을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입시는 교차지원, 복잡한 전형 등으로 고교와 대학 교육의 기반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학업과 직업 진로가 다르다면 그만큼 대입시에서도 확인할 교과나 활동이 차별화되어야, 학생들이 고교에서 ‘제’ 공부를 할 수 있다. 결국 대안은 고교와 대학 공부를 잇는 ‘진로별 입시’곧 ‘대입시의 진로화’이다.

고교 졸업자의 85%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70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계열, 학부, 학과를 두고, 입시전형만 해도 3600개가 넘는다. 최근 들어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복잡함과 혼란을 더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입시설명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학서열화를 따라 입시는 변별력을 기해왔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복잡성과 혼란을 더해왔다. 그렇지만 정작 대학의 모집단위별 적격자 선발을 위해 적정 방법을 쓰는 타당한 입시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대안으로 대학들은 같은 모집단위면 같은 종류의 교과와 활동 경험을 요구하고,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다른 범위와 수준을 요구하는 진로별 입시를 만드는데 협력해야 한다. 고교의 진로 집중과정별 핵심교과가 대학의 모집단위별 선수교과와 상응하도록, 고교와 대학 공부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진로별 입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타당한, 예측가능한, 안정된, 모집단위별로 특성화된 입시가 가능해진다.

전국 단위에서 보면 대입시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므로 다음세대 전체를 어떻게 잘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하기 싫고, 잘 못하며, 할 필요도 없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시험치고 잊어버려도 좋은 시험이라면 분명 개인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치는 악습에 불과하다. 고교에서는 할 만한 공부, 대학들은 치를 만한 대입시를 만드는 것이 공동의 협력 과제다. 평준화 비평준화, 수준별 수능, 혼란스럽게 복잡한 대입시에서 벗어나려면, 진로에 기반한 고교교육과 대입시를 구체화할 때가 되었다.

홍후조 본교 교수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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