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1774년 한 대목장에 작가미상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독일에서 글을 읽을 줄 알았던 사람의 수는 전체 인구의 1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의 파급효과는 엄청나서 로마교황청에서는 그 책을 금서로 정했고 젊은 청년들의 자살을 부추긴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원작자 괴테는 때문에 나중에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상인 묄러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 그리고 “자꾸만 생각하고 또 생각할수록 이 마음을 더욱 새롭고 복받치는 경탄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내 머리 위의 별빛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이다.”라는 말로 <<실천이성비판>>의 맺음말을 장식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작으로 세계 지성사에 일대 혁명을 이루어냈다. 전자는 책이 일반대중에게 끼친 예이고, 후자는 후대의 지성 세계에 끼친 예이다. 이 두 가지는 현재의 출판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중을 겨냥하느냐, 아니면 몇 권 팔리지 않아도 가치 있는 책을 내느냐, 이 문제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는 대학출판부에는 더욱 절실하다. 대학출판부는 수익만을 목표로 하는 일반 출판사와는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대학출판부는 해당 대학에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 대학을 바라보고 말할 때 가장 쉽게 마주하는 그 대학의 얼굴이다. 그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출판부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답이다.

이 땅의 대학교출판부가 아무 걱정 없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좋았다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해서 좋았다는 말이다. 존립의 위기의식이나 불안감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의 얘기다. 교재 판매만으로도 손쉽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많이 변했다. 교재의 제작과 판매만으로는 자체의 존립도 존립이거니와 대학출판부로서의 소임이나 위상 역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대학출판부는 사회로부터 지적 반성적 요구를 받는다. 따라서 사회의 문제적 현상들을 분석해내고 철학적으로 숙고할 수 있는 테마들을 화두로 삼아 굵직한 저술들을 선보이는 것은 대학출판부의 소임이 아닌가 한다. 저술과 더불어 과거의 인문학적 보고들을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번역서의 출간 역시 중요하게 여겨진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불었을 때 몇몇 피상적인 저술들만 나오고 제대로 된 이론서들의 소개가 미흡하여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던 일이 새삼스럽다. 대학교출판부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두 가지 판본을 동시에 출간하여 별개의 시리즈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나는 일반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을, 다른 하나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번역의 것을 출간하는 것이다. 또한 내용물만 가지고 책을 팔던 시절은 갔다.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책 디자인, 독자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레이아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다. 훌륭한 지식을 개발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큰 줄기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미래에는 그것이 반드시 종이로만 매개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미리 파악하여 이에 대비하고 종이책이 가질 수 없는 장점, 이를테면 전자책의 다중 매체적 기능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괴테의 시구 중에 “변화 속의 지속”이라는 말이 있다. 인류가 수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아직도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에도 역시 변함이 없다. 이 변화 속의 지속을 담을 수 있는 큰 틀을 우리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는 밑그림으로 그려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내의 다른 부속 기관들과의 협력, 즉 도서관, 박물관, 국제어학원과의 긴밀한 협력관계 등의 내부 네트워크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학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질적으로 건물 짓는 쪽에 투자를 하는 것보다 출판 쪽에 대폭적인 지원을 해줄 여러 문화재단들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요구된다. 폐허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질의 힘이 아니라 머릿속에 축적된 지식의 힘이다. 대학출판부가 수익성만을 좇아 갈지자 보행을 한다면 나중에 가서 모양새가 좋지 않은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고려대학교출판부는 그 이름에 합당한 걸음걸이로 걸어가 후대에 가서 낮지만은 않은 산정에 이르러야 한다. (김재혁. 문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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