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당신들은 누가 감사합니까?" 회계감사에 대한 미국의회 청문회에서 한 상원의원이 물었다. "우리의 양심입니다." 회계법인 대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거대 석유기업 엔론(Enron)의 회계 사기가 적발됐고 이를 방조한 사실이 드러나 양심의 감사를 받는다고 큰 소리 치던 초대형 회계법인이 공중분해 됐다.
  대학을 평가하겠다고 국내외 언론사들이 나서고 있다.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어느 정도 인력을 투입했는지 알 수 없으나 매년 대학을 '들었다 놨다' 한다. 영국 더타임스의 평가를 고려대가 앞장서 불러들였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첫해에 반짝 점수를 받았으나 각 대학이 대량의 자료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 순위가 뒤쳐졌다. 2010년 평가에서는 200등내에 포함된 국내 4개 대학 리스트에서 빠지는 수모를 당했다.
  더타임스는 2009년에는 영국 대학 4개를 상위 5위권에 밀어 넣더니 2010년에는 상위 5위권에 미국 대학만 포함시키는 일관성 없는 '널뛰기'형 순위를 내놓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들이 유독 목을 걸고 있다. 보다 잘 알려진 미국의 대학평가를 제쳐두고 영국계 평가 줄에 매달려 우리끼리 순위 다툼을 벌리는 안쓰러운 상황이다. '믿거나 말거나'식의 고무줄 평가 순위를 앞세워 세계 50대 대학 진입이라는 목표를 내거는 해프닝도 생기고 있다.
  평가는 우선 잘 받고 볼 일이라 대학마다 평가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서류의 산더미를 쌓고 있다. 주요 평가항목인 영어강의도 늘리고 외국인 교수 확보에도 기를 쓰고 있다. 졸업요건으로 영강 수강과목을 늘리자 학생들 사이에는 영어강좌로 때우기 편한 과목 리스트가 돌고 있다. 영어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토론과 에세이 비중이 큰 과목이 더 적합할텐데도 숫자를 다루는 과목의 영강에 수강생이 집중되고 있다. 
  여러 강좌가 동시에 개설되는 영강에서 원어민 외국인 교수 강좌는 인기가 없고 우리말 요약 시간이 길수록 수강생이 몰린다. 오죽하면 강의평가에 "이 교수는 강의 시간 중에 영어를 몇 퍼센트 사용했느냐?"는 웃기는 문항을 포함시켰겠는가. 외국인 교수 숫자는 늘어나는데 외국인 교수에게 영어강의를 듣는 학생 총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슬픈 현실이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제고하려면 토론과 에세이가 중심이 되는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 그 과목은 영어강좌로만 개설하고, 우리말 요약 강의를 금지시키는 정직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 교류가 필요한 과목의 영강은 계속 확충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목표에 대한 적합성이 부족한 단순 계량평가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논문 발표 실적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평가로 인해 유사한 주제를 반복하는 논문 편수 부풀리기와 설익은 연구물 발표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좀 더 시간을 주면 높은 수준의 선도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연구자도 업적평가 시한에 쫓겨 잔챙이만 내놓고 있다.
  강의평가는 교수들이 강의준비에 보다 노력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평가결과에 따라 매학기 시상식을 개최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자 성적평가가 점점 후해지고 과제물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상대평가에서 제외되는 영강 과목의 성적은 점점 후해지고 이에 비례해 영강 담당교수의 강의평가 점수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평가항목 중에는 "이 교수는 휴강을 얼마나 자주 했습니까?" "이 교수의 과제물 분량을 적당했습니까?" 라는 항목도 있었다. 휴강이 전혀 없었던 과목에도 5점 만점에 1점을 부여한 학생도 있었고 과제물 점수가 나빴던 학생들의 불만표출도 평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좋은 평가를 겨냥한 널널한 교육이 가져올 해독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성적확인 직전의 후한 점수에 대한 기대와 낙제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강의평가는 그 타당성을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 수강 후 3년이나 5년이 경과한 다음 상급 학년이나 대학원 또는 직장에 진출해 있을 당시 수강생을 추적해 다시 평가시켜 수강직후 평가와 비교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기관의 대학평가에 대해 대교협이나 교수단체가 나서 합리성과 공정성 여부를 평가하는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에서의 평가가 특정인의 자랑거리나 특정 대학의 홍보수단으로 남용되기보다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와 성과를 높이는 자극제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만우(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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