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알루미늄 화판에 노란색 물감을 던진다. 다음은 갈색 물감을 던진다. 두 물감이 서로를 간섭하고 섞여 마침내 새로운 빛깔이 탄생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길 수십 번. 완성된 작품을 사람들은 ‘꽃’이라 부른다. 뉴욕의 한국인 예술가 수지 큐(Suzy Q, 김태경)는 뉴욕에서 ‘꽃’을 그리는 예술가다. 고대신문은 수지 큐를 만나기 위해 7월 28일 첼시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뉴욕의 젊은 한인 예술가 수지큐 씨. 인터뷰 당시 그녀는 만삭이었다. (사진 = 신정민 기자 min@)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던 수지 큐는 부모를 따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춘기 소녀에게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코쟁이랑은 절대 얘기 안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물론 안하는 게 아니라 못 했지만요”

그녀는 캐나다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뉴욕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힘을 얻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작품 때문에 힘들어 할 때마다 캐나다 밴쿠버와 뉴욕을 오가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해 주는 좋은 멘토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그녀가 맘에 들어 할 예쁜 열쇠꾸러미를 책상에 올려두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녀는 열쇠꾸러미를 통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마친 그녀는 일본의 앤디워홀로 불리는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그녀는 처음 작업장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무라카미라는 거장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직원 20여 명 모두가 무라카미 한 사람의 작품을 위해 일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고요. 돈을 안 받더라도 여기서 일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무라카미 다카시’ 스튜디오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팀장자리에 오르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가 무라카미 밑에서 2년 동안 일한 것도 사실은 무척 긴 기간이었다. 회사에선 당연히 그녀를 잡았지만 그녀의 결정은 단호했다.

일을 그만두자마자 그녀는 다시 물감을 던졌다. 바닥에 캔버스 10장을 깔고 물감을 잔뜩 섞어 무조건 부었다. 딱히 어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무작정 물감을 부으며 자신이 원하는 느낌을 찾아갔다. “한 가지 물감을 흘리고 다른 물감을 흘렸을 때 중간에 서로 만나 마블링처럼 섞이는 느낌이 좋아요. 몇 시간 지나고 마르고 보면 각도에 따라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하죠”

수지 큐 씨가 꽃을 모티브로 작업중이던 작품. (사진 = 신정민 기자 min@)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덕분에 지난해엔 전시회를 5번이나 열었다. 뉴욕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로 인정받은 그녀의 작은 소망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꼭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아기 낳고 그때까지 몸이 회복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가능할 거에요. 그 때 꼭 오세요”

인터뷰를 할 당시 그녀는 만삭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아기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최대한 정성들여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틀 뒤 훨씬 고귀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마가 된 그녀의 작품이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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