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나 지식을 다루는 각종 학회는 따분한 경우가 많아 관중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학회의 참석자가 되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학회가 있다. 특정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주최 측의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학회에 참석할 수 있다. 바로 TED다.

 

 

◇ TED, 세계적 컨퍼런스로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앞 글자를 딴 TED는 1984년 미국에서 시작된 학회다. 오랫동안 이 컨퍼런스는 여느 컨퍼런스와 큰 차이가 없었고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인수한 후 세계적 지식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앤더슨 씨는 TED의 강연을 인터넷에 무료로 제공해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라면 TED의 모든 강연을 언제 어디서나 PC나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도록 강의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인터넷 무료 공개가 컨퍼런스의 유료 참석자를 줄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지만 온라인으로 TED를 접한 사람들은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몰렸다.

TED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을 통한 공개와 더불어 ‘오픈번역 프로젝트’의 몫이 컸다. 비영어권 이용자를 위한 오픈번역 프로젝트는 TED 측이 주도한 사업이 아니라 세계인의 자발적인 봉사로 시작됐다. 좋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된 번역 프로젝트는 수천 개에 이르는 TED 강연을 70여개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TED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현재 국내에서도 TED 강연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TEDxSeoul의 이미령 씨 역시 번역활동을 하고 있다. TED가 국내에 알려지기 전인 2007년부터 TED를 즐겨봤던 그녀는 강연을 통해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번역을 결심했다. 당시엔 오픈번역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았던 터라 이 씨는 TED 측에 이러한 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블로그에 강연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TED에서 오픈번역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됐고 이 씨는 한국 번역가로 참여하는 것을 제안 받았다. 이 씨는 “내게 감동을 준 강연을 가능한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며 “같은 뜻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은 번역 일을 하면서 받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 브랜드 개방에서 국내 TEDx까지
인터넷의 활성화와 오픈번역 프로젝트로 인해 TED는 공간과 언어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져 세계인의 참여가 더욱 가속화됐다. TED 측에선 ‘전파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의 확산(Ideas worth spreading)’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TEDx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TEDx라는 지역적인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세계 어디서든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해 8월 처음 국내에서 열린 TEDx명동은 프레젠테이션 전문 커뮤니티인 'Keynote User Group(KUG)'의 최웅식 대표(TEDx명동 디렉터)가 기획했다. 누구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세상을 지향했던 KUG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정기 프레젠테이션 파티를 명동에서 열고, 이를 영상으로 제작해 웹에 공개해 왔다. 원래 프레젠테이션에 관심을 갖고 있던 최 대표는 자신이 공부하며 배운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노하우들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KUG에 올리기 시작했고 5~60대 회원도 영상을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을 배울 수 있었다. TED의 대표 크리스 앤더슨이 주장한 웹비디오를 통한 전 세계적 혁신이 또 한 번 증명된 것이다. TEDx와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KUG는 2009년 국내최초로 TEDx명동을 유치하게 됐고 지금까지 총 14회의 행사를 개최했다. 최웅식 디렉터는 TEDx를 통한 지식의 확산을 확신한다. 최웅식 대표는 “이 모든 것이 TEDx를 통해 연결되고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 순간”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 TEDx의 중심에서 대학생을 찾다
최근 대학가에도 TEDx 바람이 불고 있다. 숙명여대의 TEDx숙명을 시작으로 연세대, 홍익대, 단국대, 광운대, 성균관대 등의 학교가 TEDx를 개최했다. 본교도 2일 TEDxKoreaUniv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열었다.

가장 먼저 개최한 숙명여대는 SNOW(http://www.snow.or.kr)라는 오픈지식플랫폼을 운영하던 것이 기반이 돼 TEDx 이벤트까지 이어졌다. SNOW는 MIT, 하버드, 예일 등 해외 대학의 공개 강의에 한글 자막을 넣어 공개한 사이트로 숙명여대의 강의도 공개하고 있다. TED 강연을 번역해 SNOW에 공개하던 학생들이 직접 TEDx를 진행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해 올해 1월 28일 국내 대학에선 처음으로 TEDx숙명을 열었다. TEDx숙명의 이은정 오거나이저는 “첫 이벤트 땐 처음이라 연사자도 광범위했고 주제도 다양했지만 대부분 대학생 참가자였다”며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의 참여가 늘어났고 세번째 행사는 TEDx명동과 함께 진행해 큰 규모의 이벤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번져가는 TEDx 열풍을 대해 TED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학교의 시설과 장소를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행사를 개최할 수 있기 때문이다. TEDxSeoul의 이미령 씨는 “웹에 익숙하고 TEDx를 조직해보겠다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연령이 대학생부터 시작된다”며 “강연에서 받은 감동을 자신의 삶과 속한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대학생의 몫”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씨는 “많은 대학생이 자발적으로 TEDx를 개최하는 것은 좋은 컨텐츠에 목말라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지적 갈증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놀라운 지적 가치를 통해 청중에게 영감을 주는 TED의 본래 성격과 달리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최됐던 대부분의 TEDx는 지적 가치보다는 연사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청중의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콘텐츠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지적 가치가 높은 콘텐츠는 대학교에서 시작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TEDx명동의 최웅식 디렉터는 “대학에서 유명한 교수님들이 직접 TEDx 행사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면 강의 혁신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내부 연사를 적극 발굴해 TEDx를 통하여 학교를 브랜딩하는 자체 발전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더 나은 TEDx를 위한 노력
국내의 TEDx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끊임없이 기획되고 있다. 하지만 각기 독립적인 주체가 자발적으로 개최하다보니 커뮤니케이션 교류가 부족해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역적으로 독립된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행사 간 소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행사 가이드라인과 일정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게 되고, 착오로 인한 의견 충돌, 의도하지 않은 경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 그룹에선 국내 TEDx 디렉터와 라이센서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각 TEDx 디렉터들은 오픈플랫폼이 가지는 한계에 공감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국내 TEDx 행사를 만들고 상생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며 서로의 행사를 홍보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트위터가 활성화됨에 따라 서로의 행사를 리트윗(RT)하면서 돕는다. 지방에서 열리는 TEDx의 경우엔 이러한 홍보가 더욱 효과적이다.

TEDx는 지식과 감동의 나눔에서 나아가 진화된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Ideas worth spreading'이라는 신념으로 세계적 지식 플랫폼을 창조한 TEDx는 고인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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