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신문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스런 순간은 기획이 이루어지는 단계다. 신문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사명감과 실제 제작 상에서 부딪치게 되는 현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나가는 기획 과정은 고뇌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기획과는 거리가 먼 경영신문의 수습기자였던 시기의 나는 ‘고대 신문’의 정체성이 없다는 말에 공감하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고대신문의 정체성에 대한 비난은 나 역시 기획이라는 벅찬 벽 앞에 서고 나자 시나브로 사라진 것 같다. ‘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신문에 반영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나마 깨닫기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대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다양한 배경과 이념을 가진 ‘고대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신문’을 만드는 것은 이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렵다는 사실을 십분 이해하고는 있지만 좀처럼 서운한 느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신문인 ‘고대신문’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근래의 ‘고대신문’의 기획은 혼란스럽다. 정체성의 문제를 떠나서 ‘고대신문’의 수요자인 ‘고대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고대인’이들이 ‘고대신문’을 읽으면서 원하는 것들은 어느 미디어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흔한 정보가 아니라 ‘대다수 고대인’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되짚어 줄 넓은 시각이다.

 사회와 대학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오늘의 ‘고대신문’은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체성은 지켜 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케케묵은 문답에서 벗어나 수요자인 ‘고대인’의 욕구에 보다 충실한 ‘고대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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