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생 대부분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식사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친구들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면 사회성과 사고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어 대다수 명문대에 식사회(食事會, Eating Clubs)가 있다. 2학년은 준회원으로 활동하며 3학년이 되면 정회원으로 식사회의 일원이 된다. 프린스턴대학교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10여 개의 식사회가 있다.

한 지붕 열 가족
식사회의 연원은 13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프린스턴 대학 내 식당이 당시 상류층 학생을 만족시키지 못하자 1879년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모여서 먹는 식사회 20개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독립돼 운영된 식사회는 학교 주변 대저택을 얻어 모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후 재정난과 회원 간의 불화로 하나 둘 문을 닫아 지금은 10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식사회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각 저택에는 회원들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로 가득하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 하거나 토론하는 공간, 컴퓨터실이나 당구장 등을 마련해 놓기도 했다. 학생들의 식사회 활동을 돕는 학교직원 에밀리 아론슨(Amily Aronson) 씨는 “식사회는 회원에게 식사 이외에도 다양한 교육환경을 제공한다”며 “학생들은 이곳을 ‘집에서 떨어진 집(home away from home)’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원 학생들은 식사회를 통해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여가시간을 보낸다. 모임의 최고참인 4학년 학생 중 일부는 실제로 저택에 거주하기도 한다.

사교하며 사고하기
이름에 걸맞게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각 모임마다 주방장이 있어 학생식당보다 맛있고 다양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 페스트리 전문 요리사처럼 특정 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학생들의 출신지역이 다양한 만큼 세계 각국의 음식을 접할 수도 있다.
이들은 매일 저녁 식사를 하는 것 이외에도 자신의 관심사를 이야기 하며 사회성과 지성을 함께 기른다. 그렇다고 모임 차원에서 특별히 주제를 정해두고 오래 토론하진 않는다. 앤드류 씨는 “요즘 우리 식사회에선 ‘마리화나 비범죄화’가 화두에 올랐다”며 “일반적으로 누구나 마른 풀로 흡연할 수 있다고 봤지만 자신의 한도 내에서 만족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쟁이 일었다”고 말했다.

열린사회를 소화한다
소위 끼리끼리 어울려 밥을 먹는데서 출발한 과거 때문에 폐쇄적일 것 같지만 현재의 식사회는 그렇지 않다. 과거 학생들은 정회원이 되기 위해 각 모임의 가입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1950년 이후 식사회가 열린 모임이 돼야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며 선발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현재 프린스턴에서 운영되는 식사회 중 절반은 비커(Bicker)가 회원이 될 사람을 정하는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선착순 가입을 하는 서명제(Sign-in)로 뽑는다. 비커의 어원을 묻자 차터(Charter) 식사회장 저스틴 카누트선(Justin Knutson) 씨는 “식사회가 처음 생겼을 당시 각 모임의 회원들이 어떤 사람을 뽑을지 말다툼(Bicker)을 하듯 논의했다”며 “지금은 이런 일을 하는 회원을 따로 뽑아 비커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서명제를 택하는 식사회는 봄학기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는다.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할 때 무작위 추첨으로 회원을 뽑는다. 물론 비커에게 가입을 제의받지 못한 학생도 서명제 모임에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식사회 활동에 소요되는 연간 7000 달러에서 8000 달러에 이르는 비용 대부분을 졸업생이 모은 기금으로 충당한다. 일부는 학교에서 지원해 주기도 한다.
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계급, 인종, 출신지, 정치색을 가진 회원들이 식사회에 들어오고 있다. 과거에는 남학생만 식사회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모든 모임에서 여성회원을 받고 있다. 현재 3, 4학년 중 75% 가량이 식사회원이다. 또한 식사회는 일반 학생들과 함께하는 축제도 열기도 한다. 각각의 식사 모임들은 해마다 3일 가량 축제를 열어 식사회의 주 무대인 저택을 공개하고 마지막 날 오후엔 라이브 밴드 공연을 주최한다.

밥 짓는 지성, 퍼주는 사랑
식사회는 자신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 이외에도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어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프린스턴 지역 청소년의 공부와 운동을 돕고 기부금을 모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전하기도 한다. 앤드류 씨는 “지난해 여름에 지역 유소년 축구팀 ‘트렌턴 테란(Trenton Terran)'에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훈련도 시킨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차터(Charter) 식사회장 저스틴 카누트선(Justin Knutson) 씨는 “지난 학기에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부금을 모았는데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며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돕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장과 분배’는 늘 민주화와 경제정의 실현의 주제어에 머물렀다. 식사회는 세월의 변화를 전통의 양분으로 삼으며 자신이 성장한 만큼 대학과 사회에 분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선도대학’을 표방하는 본교가 교육으로 나라를 구해온 전통에 식사회의 정신을 더한다면 존경받는 세계 지성의 산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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