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학과에는 네 종류의 학생들이 있다. 첫째는 입학할 때부터 사회학과로 들어온 학생들로, 99학번 이전의 학생들이 해당된다. 둘째는 소위 ‘2+2’라는 제도의 학부제로 들어와 2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이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2000학번과 2001학번 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회학과에 “진입“했다. 셋째로 ‘1+3’라는 제도로 들어와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한 2002학번들이다. 넷 째로 ‘전공 예약제’로 올해 들어온 20여 명의 사회학과 학생들이다.

이런 다양한 구성을 갖추다보니 학사행정 때문에 학사지원부에서도 골머리를 앓는다. 학과입장에서도 오리엔테이션이나 신(진)입생 환영회 등의 행사가 여간 복잡하지 않다. 학생들 자신도 정체성(identity) 문제가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사회학 전공자이면서도 입학할 때 학생회를 통해 배정 받았던 ‘인문 몇 반’에 더 애정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본다. 거꾸로 사회학과와 전혀 상관없으면서 ‘인문 7반’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사회학과 선배들과 강한 유대감을 지닌 학생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은 물론 학부제 때문이다. 학부제는 ‘소비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수와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의 학과제로의 복귀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산 지원 등으로 실질적인 대학 감독권을 쥐고 있는 교육부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는 당초 제도가 표방했던 효과는 거두지도 못하면서, 기초학문 분야의 침체, 행정적 비효율성, 학과 간의 반목 등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현행 학부제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규정에 따르면, 신입생들은 98학년도 학과(부)별 입학정원을 근거로 산출된 기준정원의  30% 이내에서 전공을 배정 받을 수 있다. 전공배정 방법은 대학(학부)별로 지망 우선 순위를 고려하되, 성적이나 기타 기준을 적용하도록 되어있다. 특정 학과로 학생이 몰릴 경우, 일부 학생들은 제2, 제3지망으로 밀려 전혀 원하지 않던 전공을 배정 받는다. 엉뚱한 전공을 택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떤 학생들은 재수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학과의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학생 선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음이 딴 데 가있는 학생을 억지로 가르치면 무슨 교육 효과가 있을 것인가. 
둘째, 현재의 제도는 그야말로 땜질 식으로 만들어져 일관된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모집단위를 예로 들면, 문과대학처럼 전체 학과들을 하나로 묶은 대학이 있는가 하면, 사범대학처럼 완전한 학과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공과대학의 경우는 2개 학과를 1개 학부로 묶었고, 생명환경과학대학은 1개 학과만이 독립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작년부터 도입된 ‘전공 예약제’도 일종의 편법으로 학부제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셋째, 학부제는 전공을 너무 가볍게 다룬 나머지 많은 학생들이 깊은 지식을 얻지 못한 채 졸업을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외국어와 같이 오랜 동안의 학습이 필요한 전공의 경우 치명적인 학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 시행중인 학부제는 깊은 연구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정치적으로 강요되어, 땜질 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학부제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다. 학부제를 위해서는 법과대학과 의과대학의 전문대학원화가 필요조건이다. 미국의 법과대학원(Law School)과 의과대학원(Medical School)은 각각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다진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이익집단들 때문에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의 불비는 기초학문의 위기와 캠퍼스의 고시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원래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고, 제도적으로 체계성을 갖추지 못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현행 학부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의 학부제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교수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의 관성에 밀려 미봉책에 연연하지 말고, 교육 정상화의 장기적 비전 속에서 학교 당국이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김철규(문과대 교수, 환경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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