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이 2차 미주횡단 취재 중 시카고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태영(법학과 59학번) 교우와의 만남이 가장 놀라웠다. 아무런 연고 없이 방문한 시카고에서 만난 교우가 고대신문 편집국장 출신이라는데 놀랐고, 그가 59학번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그의 외모와 생각은 그를 전혀 칠십 넘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에게 고대신문에서의 기억과 미국에서의 삶을 들어보았다.

그는 반세기 전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신문사활동은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을 연결해준 특별한 추억이다. 그는 1963년 서울대학교 학보사 <대학신문>과 함께 공동학술토론대회를 계획했다. 11월 11일 진명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민족의 새로운 진로를 제시한다>란 주제로 1부에선 ‘한국 민주주의 방향’, 2부에선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주제로 토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부 발표자의 원고가 문제시 되어 공동학술토론대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이 교우는 “공동학술토론대회가 이어졌다면 전통 있는 지성인의 토론장이 됐을 것”이라며 “학술토론회 주제였던 ‘성장이냐 안정이냐’라는 논의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교우가 고대신문 편집국장 재직 당시 학생대표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1964년 <3월의 물결을 말한다: 어제와 오늘을 검토하고 내일을 주시한다>는 주제로 최장집(정치외교학과 61학번), 구자신(경제학과 61학번), 이명박(경영학과 61학번) 등 총 7명의 학생 대표자가 참석해 토론회를 열었다. 이태영 교우는 “매우 진지한 분위기 속에 간담회가 진행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으로 떠난 이유엔 고대신문도 일부 포함된다. 졸업 후 본교 신문방송학과 창립을 도우며 시간강사로 일하던 중에 고대신문 주간서리를 맡게 된다. 뒤숭숭한 시기에 신문을 쉽게 장악하기 위해 학교 측에선 어린 강사를 앉힌 것이다. 이 씨는 “신문을 인쇄하려면 학생처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일일이 간섭받기 싫어서 도미 유학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동안 외국생활을 했지만 펜을 잡던 버릇은 남아있던 것일까. 고대신문 편집국장 출신으로 글을 쓰던 솜씨는 미국에서도 녹슬지 않았다. 실제로 이 교우는 시카고 한국일보에서 2007년부터 2년 간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란 주제로 칼럼을 연재했다.

그는 “글 솜씨라기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생긴 삶의 지혜”라며 “고대에서 공부하고 시간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바다 건너 미국에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했으니 다양한 경험이라면 말 다했지 뭐”라고 멋쩍게 웃는다.

 

▲ 이태영 교우는 현재 메트로폴리탄 은행의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이다. (사진=신정민 기자 mini@)

 

보수적인 도시에서 수십 년을 지내니 이 교우도 보수주의에 대해 나름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미국 보수주의의 본론이 모두 담겨있다”며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돕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는 아직 진정한 보수주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보수의 중흥을 이룬 링컨부터 레이건, 오바마 까지 모두 시카고 출신”이라며 “이 곳을 떠나기 전에 보수주의를 이해하고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영 교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래서 우리는 인생사 한치 앞 내다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 그는 스스로를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ADHD) 환자”라고 말했다. 그는 고대신문 편집국장을 지내고,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신문방송학과 시간강사 겸 고대신문 주간서리를 했다. 그 뒤 미국으로 넘어가 언론학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결국 전공과 상관 없는 은행에 취직했다.

대학생일 때는 과격한 진보주의자였지만, 미국에 건너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세상 사는 룰도 배우며 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소위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그가 한국에서 보수적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미국으로 넘어와 보수적인 도시 시카고에서 보수적인 직업인 은행장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일흔이 넘은 시간을 보낸 그의 인생에 앞으로 어떤 종잡을 수 없는 삶이 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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