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중국은 지리적 이웃이다. 미시간대학교에도 각 나라의 연구센터가 이웃해 위치해 있었다. 연구센터가 접해있는 복도엔 동아시아 지도가 쉽게 눈에 띄었다.
낯선 땅 미국에 있는 미시간대 한국학센터에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본 본국은 어떤 모습일까. 고대신문이 한국학 센터장을 맡고 있는 곽노진 교수를 만나 한국학에 대한 이야기와 세계화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우리는 미국서도 예민한 이웃들
2007년에 세워진 미시간대 한국학 센터는 다른 아시아계 센터보다 역사가 짧다. 과거엔 ‘프로그램’ 형태로 있었던 것이 미시간대학교 도시계획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남상용(남· 76세) 씨가 23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센터로 발전했다. 이로써 미시간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교수의 연구 지원비용이 늘어나고 든든한 기반이 마련됐다. 곽노진 센터장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센터를 운영해 온 일본과 중국에 비하면 많이 늦지만 그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은 없다”며 “이제 역할에 맞는 위치에 선 셈”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세 나라가 타국에서 연구센터라는 이름으로 이웃하고 있지만 국가 간 긴장감은 본국 못지않다. 센터 게시판 지도의 표기마저 민감한 문제라 쉽게 따질 수 없다. 중국학 센터에서 동해에 ‘Sea of Japan’라고만 적힌 동아시아 지도를 붙였지만 한국어센터에선 공식적으로 항의하진 않았다. 곽 센터장은 “민감한 사안이라 학회에서도 아직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며 “평소에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 | 신정민 기자 mini@

한국을 공부하면 한국학이 된다
이곳의 한국학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생각하는 고전과 역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곽 센터장은 “한국 관련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면 사회과학, 인문학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한국학”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이면을 탐구하는 사회학도 한국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시건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30여 명으로 이들의 전공은 사회학, 정치학, 역사학, 신문방송학 등으로 다양하다.
동부나 서부의 유명대학에 비하면 앤아버엔 한국인이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미시건대에도 점차 한국인이 늘고 있는 추세다. 늘어나는 한인 수 만큼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아시아어 문화과정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부생은 100여명 정도다. 한국어 과정은 초급부터 고급까지 4단계로 이뤄지며 한국어가 익숙한 해비탯(habitat)과정과 이에 익숙지 않은 논-해비탯(non-habitat)과정으로 나뉜다. 현재 해비탯과 논 해비탯 학생의 비율은 6대 4다.

우리나라 연구하고 보여주기
미시간 대학에는 한국학 센터와 별개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학내기관이 더 있다. 바로 미시간대 박물관 안의 한국관이다. 미시건대의 아시아 컬렉션은 미국 대학 박물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현재 미국에서 한국관이 있는 대학 박물관은 네 곳 뿐이다. 우리가 방문한 미시건대 박물관이 그 중 하나다.
이곳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한국관의 규모가 일본관, 중국관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2006년 박물관 확장공사 당시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김병국)과 주식회사 세아제강(회장=이운형)이 각각 50만 달러와 25만 달러를 지원해 지난해 3월 현재의 모습으로 한국관을 열었다.
한국관엔 시대별로 다양한 도자기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중 250여점은 남상용 씨가 기부한 30만 달러로 구입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지만 특히 고려청자의 묘한 푸른빛을 신비로워 한다. 한국학 센터와 한국관은 서로 독립해 있지만 이곳에서 한국을 알리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 사진 | 신정민 기자 mini@

미시간대 박물관은 한국관 외에 보존연구실(Conservation Lab)으로 유명하다. 박물관 내부에 위치한 이 연구실에선 아시아의 유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복원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다.
이런 작업실을 갖춘 곳은 미시간대를 포함해 네 곳 뿐이다. 동양화는 재질과 물감 종류가 서양화와 많이 달라 아시아 유물을 복원하는 연구실의 희소성이 높다. 그래서 워싱턴에서 미시간대 박물관에 유물복원을 종종 의뢰하기도 한다.
동양화 복원은 작업이 정교한데다 종이를 천천히 말려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한 작품에 6개월 이상이 걸린다.

세계화는 서구화가 아니다
곽노진 센터장은 미시간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내가 한국 사람이고 동양인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흑인도 백인도 아닌 피부색을 가지고 다양성을 경험해 왔다. 그래서인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경쟁의식을 갖고 “무조건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1등 하려는 의욕도 좋지만 세계의 이웃들을 이해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진 센터장은 오랜 시간 타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진짜 한국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곽 센터장은 “우리는 세계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하며 전통적인 한국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외국인들은 대외용으로 치장된 서구적인 한국보다 ‘한국적인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의 본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화가 서구권 국가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태도인지 아니면 인습을 타파하고 우리의 전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자세인지 성찰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에서 배운 세계화는 한국의 내면을 돌아보게 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