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처음 올라와 자취를 시작할 때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에 가슴이 벅찼다. 혼자 사는 것에 나름대로 품은 로망과 기대 때문에 처음 몇 달은 신이 났다. 하지만 스스로가 궁상맞아 보이는 순간이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혼자 TV앞에 앉아 밥을 차려먹을 때였다.

박완서 단편집 <친절한 복희씨>의 단편 ‘후남아 밥 먹어라’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모든 걸 잊어가는 중에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은 ‘딸에게 밥 해주는 일’이다. 밥 때 마다 새하얀 밥을 지어 ‘후남아, 밥 먹어라’고 외치며 주인공을 애타게 찾는다. 박완서는 그녀의 수필집에서도 밥 얘기를 한다. 직접 지어 지인과 피붙이에게 내놓는 밥이 편안함과 위안, 지친마음에 대한 치료제라고 뽐낸다. 밥 한 끼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요 근래 학교 주변이 많이 달라졌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선배는 자주 가던 밥집이 없어졌다며 크게 아쉬워한다. 눈 깜짝할 새에 학교에 접근성 좋은 곳은 카페들이 차지하고 있다. 처음엔 카페가 많이 생겨 반가웠지만 이젠 염려스럽다. 동기나 선후배들과 몰려가 푸짐하게 먹던 곳이 많이 사라져서다. 밥집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을 동기, 선후배와 왁자지껄하게 먹다보면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 같아 즐거웠다. 밥집은 동기와 우정을 쌓고, 선후배와 가까워지는 곳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박완서의 경우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어 밥 한끼 먹자고 해도 빈말로 듣거나 부담스러워한다며 아쉬워했다.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밥 한 번 먹자고 연락해야겠다. 혼자 밥 먹기 싫을 때 불러내서 편안하게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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