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시절, 난 꿈같은 대학생활을 꿈꿨다.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고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방과 후엔 내가 좋아하는 동아리에 가입해 취미 생활을 여러 동기 및 후배들과 같이 보내는 그런 꿈. 정말 그냥 꿈이었다. 재수생활이 끝나고 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곧 국어국문학과지만) 10학번이 됐다.

그런데 지금 내 꿈과는 달리 난 지금 홍보관 2층에 있는 고대신문사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공강 시간에 전화로 취재 요청을 하고 방과 후엔 기사를 쓰며 동기들과 신문사에 대한 온갖 불만을 토로하는 취미(?)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여기서 자기도 한다. 거의 신문사에서 산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난 대학와서 재수생 때보다 괜찮아졌다는 소릴 못 듣고 산다. 오히려 폐인같다라는 소리를 재수생 때보다 많이 듣는 것 같다. 거기다 재수생 때보다 친구도 없다. 하도 신문사 때문에 바쁘다보니 애들이 이제 연락도 안한다. 가끔 연락이 와도 취재중일 때가 많아 그냥 끊어버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신문사가 좋냐고..? 되도록 티는 안내려고 하지만 나.. 여기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불만도 엄청 많다. 바꾸고 싶은 것도 엄청 많고. 참고로 나 입실렌티 때 설문조사하느라 아이유 못 봤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아직 난 아직 수습기자니까.

그런데 나도 이 짓을 왜 하고 있을까? 난 우스갯소리로 용기가 없어서라고 말한다. 용기가 없어서 여기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용기있고 결단력있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당당히 여길 나갔다고. 난 소시민이라 이래저래 살고 있다고 말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아직 고대신문에 남아있는 이유는 또 있다.

난 고대신문 1005 기수의 본관기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단, 총장 비서실, 학적수업지원팀, 대외협력부, 기획평가팀, 교양교육원, 교수의회, 직원노조에 관련된 기사를 쓰는 기자다. 그래서 지금까지 쓴 내 기사는 언론사 대학평가 비교기사, 총장 선거 기사 등이 있다. 즉 학교 행정과 관련된 일을 쓰는 경우가 많다. 다른 기자들이 학생들을 주로 만나는 기사를 쓸 때 난 총장실가서 기부식 촬영하고 총장 선거 때문에 전략기획실장, 교수의회 의장 등을 만난다. 내가 신문사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못 만날 사람들이다. 이외에 난 의료노조 파업 기사를 내가 맡는 바람에 본관, 법인의 사람들과는 상극인 민주노총같은 진보단체 분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 파업이 시작하고 며칠간 난 의료원 측과 노조 측의 의견을 유일하게 동시에 듣고 서로에게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사회의 극과 극을 내 눈과 귀로 직접 들었다. 난 며칠 간 본관과 재단을 출입하면서 노조 측의 의견을 듣는 그런 기자였다. 책이나 TV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이 아니고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대학생치고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걸 보고 들으면서 난 사회가 어떤 곳이구나라는 것을 다른 대학생들보단 조금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난 이게 재밌다. 다양한 얘기를 듣는 것. 그것도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듣는 것도 재미있고 나보다 경험이 훨씬 풍부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나 스스로의 관점이나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이전까진 거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미래에 기자를 하지 않더라도 이 경험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수습기자인 내가 이 정도 경험을 했다면, 좀 더 오래 일하다보면 더 재밌는 일을 겪지 않겠는가?

난 재밌는 일이 또 생기고 그걸 가장 먼저 여러 각도에서 들을 수 있는 ‘재밌는’ 기회가 또 생기지 않을까 해서 아직 여기 남아 있다. 난 재미없으면 안한다. 좋든 싫든 고대신문사 기자라는 타이틀이 이 재밌는 일을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신문사를 아직 하고 있는 이유다. 하루하루 수업만 듣고 애들이랑 밥 먹고 술 마시고 얘기하고 과제하고 집에 돌아가서 TV보다 자는 것은 지루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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