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신문사에서 식사를 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간단한 중화요리를 주문하더라도 짬뽕과 자장면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그나마 메뉴 선택은 다행이다. 신문을 제작할 때 메인 기사나 사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곤욕스럽다. 한정된 신문 틀에 들어갈 수 있는 사진은 제한적이지만, 가능하다면 모두 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물론 현실은 유명 텔레비전 광고 모델처럼 ‘난 둘 다’라고 말할 수 없다.
우유부단하고 결정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최소한 중화요리를 주문하는데 있어 고민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바로 ‘반반’ 메뉴가 등장한 것이다. ‘짬짜면’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모두들 획기적이라며 반겼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짬뽕이면 짬뽕, 자장면이면 자장면이지, 짬짜면이라니. 이상하게 제작된 그릇 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짬뽕과 자장면이 한 그릇에 함께 담겨 있는 모습은 물과 기름, 개와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나에게 짬짜면은 그저 사람의 끝없는 욕심과 욕망을 실체화 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통닭을 먹을 때도 양념이면 양념, 후라이드면 후라이드로 하나로 정해야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은 먹지 않았다.
왜 우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걸 두려워할까. 아마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얻는 쾌감과, 다른 하나를 포기했을 때 따라오는 상실감이다. 하지만 이 상실감은 부정정인 것이 아니라 다음에 그것을 선택했을 때 얻는 쾌감과 기쁨을 배로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상실감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잃어버리고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항상 어느 것 하나 잃지 않고 모든 것을 껴안고 가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짬뽕과 자장면 사이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세상에 나가서는 좀 더 용감하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그러므로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정민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