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대변되는 기존의 기부 문화는 남들보다 더 가진 사람이 중심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부 문화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자신이 가진 재능만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다. 경제적 여유와 상관없이 마음의 여유만으로 기부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재능기부는 사람이나 기업이 가진 능력과 기술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에 나눠주는 것을 뜻한다. 물질적인 것이 오고가는 일반적인 기부와는 다른 형태의 기부다. 봉사의 한 종류로 볼 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기부에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재능기부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블로그를 통해 대중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며 대중화됐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을 블로그에 게시한다. 게시물로 나눠진 이들의 재능은 블로거 사이에서 확산되고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네이버 해피빈을 기부한다. 이렇게 모인 해피빈은 청소년 교육 지원, 유기견 보호, 아이티 복구 지원처럼 각각의 목적에 맞게 쓰인다.

이처럼 블로그를 통한 재능기부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5월 노희경 작가가 블로그 연재를 통해 모인 인세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노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연재하면서 해피빈 콩저금통 배너를 달았고, 2달여 만에 400만 원 이상이 모였다. 최종적으로 모인 1000만 원 이상의 금액으로 캄보디아 오지마을의 학교를 지었다. 노 작가를 시작으로 네이버 블로그 재능기부에는 작가 김영하, 가수 이상은, 음악감독 박칼린, 요리사 에드워드 권 등이 동참해 콩저금통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 맞는 재능을 나눈다. 특히 가수 이상은 씨는 지난달 30일 재능기부 콘서트를 열어 온라인으로 만나던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 함께 나누는 재능의 기쁨에 공감했다.

지난 10월엔 나노과학자인 텍사스주립대학교(University of Texas-Dallas)의 김문제 교수가 ‘김문제의 미래 뉴스’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현재까지 이 블로그엔 1500회 이상의 기부가 이뤄졌다. 김 교수는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과학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말 못하는 환자의 뇌파를 읽어주는 통역기 포스팅은 78개의 덧글, 공감 15개로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블로그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김문제 교수의 소외청소년 교육지원 콩저금통’에 자신들이 가진 콩을 저금하면 기부가 된다. 2010년 10월에 등록된 김 교수의 콩저금통은 지금까지 1500회 이상 기부가 되어 1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김 교수의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남기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통해 나눔을 거듭하고 있다. 김 교수의 블로그를 관심 있게 본다는 김혜인(여·27세) 씨는 “먼 훗날에나 생길 법한 일이 과학 발전 덕분에 앞당겨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며 “블로그에서 배움을 얻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기부까지 하게 돼 기부가 생활에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해피빈 모금에 동참하게 된지 1개월째라고 밝힌 이보민(여·17세) 양은 “블로그를 통해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을 듣는 것은 책으로 읽는 것보다 더 가슴 설레는 일”이라며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같은 마음으로 기부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김문제 교수는 “과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재능 기부를 통해 모인 해피빈이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나눔봉사활동3기가 아이들과 함께 후드티를 만들고 있다.

대학생의 재능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는 2009년부터 1년에 2번, 여름과 겨울에 대학생 과학나눔봉사단을 모집해 재능기부를 지원한다. 봉사단은 대학생의 과학적 재능을 소외 계층 학생에게 나눠 과학 지식과 체험 할 수 있게 한다. 4기 과학나눔봉사활동에 참여한 이창엽(공과대 전전전05) 씨는 “공대생이다보니 과학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며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살려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고 나로 인해 과학에 흥미를 보이게 돼 뿌듯했다”고 말했다.

'글노리야-두번째 이야기'에서 빛, 사진과 글귀를 소재로 만든 조형물.

지난 27일엔 홍대 카페에서 대학생 글전시 기획단체 ‘글노리야(Gloria)’가 나눔 일일 카페를 열어 자신들의 재능으로 따뜻한 주말을 보냈다. 글노리야는 글의 새로운 표현을 찾아내 사실적인 묘사로의 의미를 전달하고 시각적 효과를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는 전시공연기획 단체다. 이들은 잉고마우러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글귀가 담긴 사진을 빛과 조형물을 이용해 전시했다. 이날 일일카페엔 글노리야의 전시회와 사진작가 유승호 씨의 사진전, 재즈 연주회가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글노리야는 전시회를 통해 모아진 수익금 전액을 난치병, 불치병 아동에게 전달했다. 글노리야의 이현경(공과대 건축환경09) 씨는 “적은 인원인데다가 재학생 신분이라 준비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행사를 잘 마치게 돼 기쁘다”며 “기부를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의 시도가 아직은 생소한 재능기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고 말했다.

재즈밴드 504가 글노리야의 재능기부에 동참해 연주회를 열었다.

기부는 특별한 것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폐쇄적 나눔이 아니다. 자신이 잘하는 능력을 남에게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부는 성립한다. 기부자와 수혜자 간의 아름다운 소통이 있는 나눔, 나눗셈이 곱셈으로 바뀌는 것이 바로 재능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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