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교령이 내려졌을 때도 진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계속했다.
조형학부가 ‘미술교육대학’이었던 22년 전부터 본교를 지킨 조형학부의 역사, 진영선(조형학부) 교수를 만났다. 진 교수는 “재임 기간 이야기를 하려면 며칠 밤을 새도 부족해요”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교와의 인연은 1988년 국민대 조형대학 재임 중 본교 미술교육과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수락하며 시작됐다. 진 교수는 당시 미술교육과의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고 회고했다. 강의실도 변변치 않아 사범대 신관 3층의 강의실을 하나 빌린 게 전부였다. “시설은 하나 둘씩 채워가는 재미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힘들었던 건 당시 학내 상황이었죠”

부임 첫 해인 1989년 초, 교수협의회와 학생대표자들은 총장선임제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리적인 마찰이 생길 정도였다. 총학생회 학생들은 수강신청 날 미술교육과를 찾아와 학생들을 선동하려 했다. 당시 학생들을 지도하던 진 교수는 학생회 학생들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학생들의 활동을 지지해요. 대학생으로서 그 정도의 열정이 없다면 젊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제 간의 갈등은 대화로 풀어야지 선동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립 상황은 지속됐고 3주 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교기간에도 진 교수는 강의를 계속했다. “힘들게 입학한 학생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한 달 커리큘럼을 짜서 학생들을 문화원과 박물관에 데리고 다니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 강의를 함께 들었죠”

진 교수는 2005년, 본교의 100주년 역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100년의 향기, 1000년의 빛> 제작에 참여했다. 기록으로는 남아있지만 사진이 없는 사건들의 이미지를 그리고, 여러 사진을 한 그림으로 모아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여러 번의 답사와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진 책에는 진 교수의 애교심이 녹아들어 있다.

재임기간 중 ‘패션 디자인 및 머천다이징’ 연계전공의 주임 교수를 맡았던 진 교수는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들은 예술 뿐 아니라 문학, 철학, 과학, 심지어는 의학까지 모든 방면에 능통했어요. 흔히 ‘르네상스맨’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좇아야 할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본교를 떠나는 게 아쉽지만 이젠 교육자가 아닌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진 교수. 그녀는 이미 10월 국내 전시와 미국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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