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페인트로 칠한 60년대 간판. 모루 위에서 쇠를 직접 치는 망치. 대부분의 농기구가 공산품이 돼버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수원 팔달구에 위치한 동래대장간에는 1960년대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땀내와 쇳내가 배인 그곳에서 대장장이 정대봉(남·60세) 선생을 만났다.

사람 하나 겨우 움직일만한 대장간 한가운데에는 쇠를 달구는 화덕이 있다. 화덕 앞쪽의 선반에는 손수 만든 칼, 도끼, 망치와 같은 농기구가 가득했다. 그 속에서 정 선생은 벌겋게 달궈진 쇠를 망치로 두드리고 있었다. 불에 달군 쇠를 두드려서 펴고 물속에 넣었다. 이를 반복하자 칼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칼날 모양의 쇠를 그라인더에 갈아 날을 세우고 나무로 손잡이를 만들면 쇳조각은 칼이 된다. 추운 날씨에도 정 선생은 땀범벅이다.

정 선생이 처음 대장간 일을 접하게 된 것은 19살 때였다. 그는 안동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동네 아는 형을 따라 도시로 올라와 농기구 제작회사에 들어갔다. 손재주가 좋았던 정 선생은 일이 적성에 맞아 남들보다 빠르게 기술을 배웠다. “이쪽 일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입사 3년 후부터 제작실습에 들어가는데 저는 1년도 안 돼 망치를 잡았으니까요”

동래대장간은 원래 정씨의 처(妻)삼촌 김봉달(남·81세) 선생이 40년 넘게 운영해 온 재래식 대장간이다. 정 선생은 2002년 회사를 퇴직하고 연로한 처삼촌을 대신해 대장간을 맡았다. 처음 1년은 어려움을 겪었다. 삼촌의 손님들이 정 선생의 실력을 의심해 잘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 삼촌 못지않게 정 선생 역시 한평생을 쇳덩이와 함께했던 터라 곧 동래대장간의 명성을 되찾았다. “손님들께 실력도 보여주고 단골손님도 많이 만들었어요. 처음 온 사람들도 ‘진짜 칼은 여기에 있다’며 알아줄 정도에요”

정 선생은 요즘 시대가 예전과 달라 직업에 대한 전문성이 점점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평생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도 많이 변했거든요. 옛날에는 주변에 대장간이 몇 개 있었는데 이제는 다 닫고 나 하나 남았어요. 장인이란 말도 이제는 옛 말이네요”

정대봉 선생은 ‘일’에서 얻는 행복과 보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동래대장간을 찾는 손님들을 보거나 물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요즘엔 좋은 회사를 들어가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40대 중반이면 회사 눈치를 봐요. 이러니 대학생들이 점점 더 불안해하고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게 너무 행복해요. 살아있는한 제 자리를 꾸준히 지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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