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부서의 사명(使命)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부서원과 같이 고민하는 공동작업을 한 후 결과물을 제출하시오”

어느 날 아침 출근해서 컴퓨터를 뒤적이니 위와 같은 지시사항이 튀어나왔다. “참 이젠 하다 하다가 할게 없으니까 별 이상한 걸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는구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명? 은행에 다니는 내가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의사 같이 생명을 구한다는 말도 할 수 없을 테고, 학자 같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말도 할 수 없을 게다. 고작 고객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이 당면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고,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되는 것 아니었던가? 하긴, 80년대 초 스티브 잡스라는 분은 매킨토시라는 컴퓨터를 만들어서 세상을 구원하겠노라고 당차게 소리쳤다지…

신문을 보니 노심용해의 가능성이 높아진 후쿠시마 원전에 8백명의 근무자 중 자원자 50명이 남았다고 한다. 정년퇴직을 반 년 정도 앞둔 다른 전력회사의 한 직원도 그 50명을 지원하기 위해 후쿠시마로 향했다고. 그는 집을 나서며 “지금의 대응에 원전의 미래가 달려있다. 사명감을 갖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심용해가 일어나면 최소한 원전 반경 50Km 주변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노심용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현재 사람이 맨몸으로는 15분 밖에 버틸 수 없는 분량의 방사능이 내리쬐는 환경에서 산소호흡기와 손전등에 의존해 원전의 균열부위를 찾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노심용해는 절대 일어나게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이 아니다. 짐작하건대 진실과 정성이 합쳐진 말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자신이 꿈꾸는 것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러한 모습 말이다.

네모난 컴퓨터로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스티브 잡스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즐기는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다만, 그 도구의 모양이 시대에 맞추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사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함으로써 아이튠즈와 같은 신 영역을 개척해 왔다. 그의 정성이 진실과 닿아 있기에 그가 만들어낸 제품에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자주 접하는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이 다니는 직장은 어떠하냐?”는 것이다. 이를 더 자세히 말하면 연봉, 후생복지는 어떻고 근무환경은 어떠하냐는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 평생 동안 내가 진정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학년과 학기를 시작하는 3월이 아직 남아 있다. 상큼한 봄 햇살이 느껴지는 요즘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그대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진실로 대하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겠는가?

<Still Not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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