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은 1990년대 초반의 ‘연주자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김현식과 함께 활동하며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로부터 화려하게 주류로 등장한 봄여름가을겨울, 한상원이나 김광민 등의 해외 유학파와 함께 1990년대 초반의 연주음악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원영은 1970년대부터 음악활동을 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전설적인 밴드 사랑과 평화의 멤버로 재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도미, 버클리 음대에서 프로페셔널 뮤직을 전공하고 돌아왔다. 최근엔 버클리 출신의 뮤지션이 조금 흔해진 느낌이지만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1990년 당시 정원영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전태관, 한충완과 한상원, 그리고 베이스 마이스터 송홍섭과 함께 의기투합, 프로젝트밴드인 ‘수퍼 밴드’를 결성해서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 최고의 무대에서 ‘퓨전 재즈’를 전파했다. 아직 홍대앞의 모던록 뮤지션들이 부흥하기 이전, 소위 ‘가요’라고 불리우는 상업적 한국 대중음악의 대안이 될만한 음악은 모두 정원영이 관련된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타리스트 한상원과 함께 ‘정원영과 한상원밴드’를 꾸려나갔고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는 ‘긱스’를 통해서 꾸준한 연주활동을 벌였다.

정원영 음악의 특성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성에 있다. 그리고 특정한 타겟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폭넓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은미, 박정운, 이승철, 김현철, 장필순 등의 대중적인 보컬리스트와 오랫동안 작업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아티스트 본인의 자의식을 표출하는 것 보다는 밴드스타일의 연주에 충실한 활동을 해오던 그가 5년만에 발표한 솔로 앨범은 역시 개인기 보다는 연주음악의 구성 그 자체에 노력했다는 느낌을 준다. 테크니컬한 면에서 강점이 있는 연주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 독주악기의 지나친 강조도 없고, 선율을 포기해가면서 스케일의 과시를 보이는 만용도 없다. 뉴에이지적 앰비언스와 함께 소박하면서도 선명한 멜로디의 피아노가 곡을 지배하는 첫 트랙 ‘사치’나 드러나는 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리시즘을 지니고 있는 7번 트랙 ‘뚝방 서다’는 정원영 특유의 코드웍과 함께 이제는 그가 대가의 위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튠들이다.

퓨전재즈의 16비트 리듬을 넘어서 훵키한 느낌을 주는 12번 트랙 ‘Rhythm Of Your Heart’는 오랫동안 긱스 활동으로 연마한 그의 장기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제목부터 이미 서정적인 ‘봄 눈’의 아름다운 멜로디라인은 듣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악곡의 형태가 대안음악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스탠다드 재즈풍의 브러쉬 워크와 스윙감 있는 베이스, 그리고 밥에 가까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제공되는 11번 트랙 ‘귀향(Thanks 9)’은 앨범의 백미다. 후주 부분의 보이 소프라노 코러스에 이르러 이것이 ‘얼터너티브 재즈’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음악임을 눈치채게 된다.

정원영의 이름은 추억이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대중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연주자적 욕심이 아니라 대중을 이끌 수 있는 모범적인 연주 음악인 것이다.

<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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