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몸집에 인자한 표정. 최찬희(법학과 51학번) 교우에게는 친할머니 같은푸근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번 개교기념일에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한다. 평생을 받쳐 여성계몽과 국가발전에 매진하고 본교 교우회 발전에 앞장 선 점을 인정받았다.

   최 교우는 재학시절을 회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녀가 보여준 빛바랜 사진에는 길게 땋은 머리의 앳 된 소녀가 서 있었다. 1952년 대구 임시교사 교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재학시절에는 법학과 홍일점으로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피난 시절 교수님들이 직접음식을 해주기도 하면서 학생들을 정말 가까이 대해 주셨지. 특히 여학생이 나 혼자라서 각별히 신경써주셨어”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녀는 언제나 ‘여성최초’였다. 3학년 때는 당시 법대생들의 로망이었던 모의재판 ‘아남국회’의장을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맡아 화제가 됐다. 졸업 후에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최초로 노동법을 전공했다. 이 후 최찬희 교우는 ‘여성계몽과 남녀평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여성 근로자와 위약한 여성들을 계몽하고 여성전문 인력 개발에도 기여했다. 방송에 출연해 여성 계몽과 국가발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했다. 1978년에는 평론집 <여성은 이방인인가>를 통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야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 당시는 여성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외침이 시작 된 시대였어.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노력으로 지금과 같은 시대가 올 수 있었던 것이지”

  그녀는 초대 여학생회 회장, 초대 여자 교우회(석란회) 회장, 본교 장학금제도 최초 마련 등 1967년 여자 교우회 창설이후 40여 년간 활발한 교우회 활동을 해왔다. 이제 ‘최찬희’라는 이름 석 자는 여자 교우회의 상징이자 역사로 자리 잡았다. 여성 지도자로서 여성 교우들을 이끌어간 최 씨를 후배들은 ‘The Best, The First Woman’이라 부른다.

  그녀는 이번 수상에 감사함을 전하며 더욱더 모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이 80이 되고나니 고대 사랑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고대사랑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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