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고등학교 동창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홉명으로 구성된 유명 걸그룹이 되려다 갑작스럽게도 일반고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곤 이과계열 전체에서 전교 최상위클래스를 유지하며 결국 고3 여름 방학 때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누리꾼은 그녀를 부러워했다. 얼굴에 학벌까지 갖춘 그녀를 승리자라고 했다.

그녀는 부러움을 사는 존재였다. 가수의 꿈을 접은 그녀가 ‘승리자’인 이유는 갑작스레 진학에 뜻을 둔 것이 아니다. 명문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사실 명문대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사람들은 ‘명문대에 진학’을 행복의 요소로 생각하기에 그녀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대학 합격은 행복의 요소이며 학교의 수준에 따라 행복의 수준도 나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연세대 경제학과에 다니는 과외선생님을 진심으로 우러러봤다. 난 그에게서 캠퍼스의 낭만 그리고 자유를 상상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그 이름들은 대학생을 행복하게 하거나 실현 가능한 요소가 아닌 케케묵은 단어임을 알아버렸다.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행복할까? 그녀의 책은 그녀가 행복하다는 걸 이야기할까. 적어도 그녀와 같은 학교의 학생 4명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생은 우울하다. 나약한 정신 때문일까. 줄 세우기에 급급한 세상 탓일까. 현재 우리사회에서 사는 우리세대 대학생은 행복하지가 않다.

성공적인 취업이 행복의 요소가 돼버린 대학생의 귓가엔 ‘줄서기에 밀리면 인생의 패배자’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맴돌 뿐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