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일이지만 초등학생 시절 집에서 가까운 용산역은 어린 눈에도 추레해 보였다. 그래도 역 주변은 매일 교회의 밥차가 다녀가는 곳이어서 노숙자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점심, 저녁으로 밥차가 있었기에 용산역 주변은 항상 노숙자로 북적였고, 자연스레 용산역 안팎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때 용산역 관리 사무소에선 그런 노숙자들을 일부러 쫓아내지는 않았다. 이런 역이 어느 날 민자역사로 신축되면서 백화점과 대규모 상가가 들어서 규모도 커지고 외형도 화려해졌다. 민자역사로 바뀐 후부터는 용산역의 이전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용산역 주변 부지를 매입한 민자역사에서 광장을 통제해서 교회의 밥차 출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아마 수많은 노숙자들은 더 이상 용산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노숙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새로운 용산역을 더 반기는 모양새였다.

최근 안암 주변 방값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안암 인근 부동산 중개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나는 대학가의 방값 상승요인을 단순히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암 주변의 방값 상승요인은 다름 아닌 신축 건물이었다. 건물주들이 더 높은 월세를 받기 위해 기존의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한 결과였다. 이로 인해 등록금에도 벅찬 학생들은 방을 잡을 때 보이지 않는 통제를 당하게 됐다. 물론 넉넉한 집안의 학생들에겐 새 건물에서 지낼 수 있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노숙자가 용산역에서 쫓겨나듯이 학교 주변에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방 값의 부담 때문에 원주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최근 많이 보이는 신축 건물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살 수 있는’ 옛 집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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