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란 일하지 않는 남는 시간, 일로부터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씻어 버리고 신체적 건강을 도모하는 시간, 그래서 궁극적으로 일을 보다 잘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여가의 원래 개념은 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는 일상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 신의 모습을 봄으로써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여가는 우리에게 최상의 행복을 맛보게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렇듯 여가는 휴식(休息)이기 보다는 안식(安息)의 성격이 강합니다. 안식은 노동으로 때 묻은 자기 내면을 깨끗이 하며 잊고 있던 절대자에 대한 열망을 추구한다는 적극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실제적인 문제해결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 자체의 웰빙과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모든 것에서 웰빙을 찾고 있습니다. 웰빙의 일환으로 운동하는 사람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중입니다. 진정한 운동은 안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은 땀을 쫙 빼고(배설의 욕구) 온 몸을 씻어내고(청결의 욕구) 난 후에 마시는 맥주 한잔(충만의 욕구)의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를 운동 삼락(三樂)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순전히 몸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차원에서의 여가활동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운동의 수준을 안식의 차원으로 높여야 합니다. 내 자신과 환경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회복의 방법으로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만의 오락과 유흥 활동이 아닌 인간적, 환경적 관계 개선의 방식으로서 운동을 승화시켜야 합니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인 초원이에게 운동은 삶이었듯이, 운동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운동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과 지혜를 습득하는 그런 운동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운동이 진정한 의미의 여가활동이며 안식이 될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는 사람만 보이고 진짜 멋지게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드물기만 합니다. 이러한 공간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저는 행복할까요? 길쭉한 소나무와 맑은 햇살과 그리고 철쭉꽃이 어우러진 캠퍼스가 있는데도 동료교수들은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찾아가지만 특별히 할 공통의 얘깃거리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놀아본 사람과 함께 하면 삶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 학생들은 대학입학 전 12년 동안의 집, 학교 그리고 학원의 정해진 공간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확장된 공간과 늘어난 자유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헤매는 중입니다.
대학은 자유, 정의, 진리를 추구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공간이며 자유를 추구하지만 정작 자유가 주어졌을 때 또다른 속박을 찾아나서는 사람 같습니다. 내년부터 모든 학교에 주5일제가 시행된다고 합니다. 학교가 시작하면 다른 직장들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 중독에 걸린 어른들, 공부에 중독된 학생들에게 하루만큼의 여가시간이 늘어난 셈입니다. 대학은 학교와 사회의 중간과정에 있는 생활공간입니다. 여가를 즐기고 진정으로 노는 능력을 학습하는 공간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활동하는 능력을 최종적으로 학습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여가의 어원은 희랍어 ‘스콜레(schole)’와 라틴어 ‘스콜라(schola)’ 입니다. 영어의 ‘스쿨(school)’과 ‘스콜라(scholar)’라는 단어가 여가의 어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가는 바로 학문과 공부이며, 공부로서 여가가 행해지는 곳이 바로 학교이며,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학자입니다. 여가는 단순히 노는 활동이 아니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절대 노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류태호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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