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대동제, 어떻게 변해왔을까?
고려대 대동제, 어떻게 변해왔을까?
  • 김다혜 기자
  • 승인 2011.05.2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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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축제의 공식적인 연원은 1962년 5월 4일부터 3일간 개최된 ‘석탑 축전’이다. 축제의 이름은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하던 조지훈 선생이 지었다. 석탑 축전은 교내에서 각 단위별로 진행하던 각종 행사를 한데 모아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다. 제 1회 석탑축전은 6일 동안 다채로운 30여종의 행사를 진행했다. △교우 대 교직원 체육대회 △힘의 제전 △매스게임 △포크댄스 등을 진행했다.

1974년 5월 2일엔 제13회 석탑축전이 열렸다. 당시 축제에는 인촌추모 강연회, 호박회 토론대회, 석탑 민요제 등이 열렸으며 법대 학생회가 주최한 가상재판이 인기가 많았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쌍쌍 카니발’로 불린 커플 댄스대회였다. 남녀 커플이 아니면 참가할 수 없었던 이 행사엔 2000여명이 참여했다.

석탑축전이 ‘대동제’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1984년 석탑대동제로 이름을 바꾼 축제는 △길놀이 △마당극 △줄다리기와 같은 대동놀이를 진행했다. 당시 독재정권의 강제징집 이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학생을 위로하는 합동위령 굿을 지내면서 ‘대동제’는 대학가 전역에 퍼져나갔다. 3년 후인 1987년 5월에는 전국 대학축제 대부분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에 소비지향적인 축제에서 벗어나고 사회 비판적인 행사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의식을 고취시켰다. 1000여명의 학생들이 횃불을 들고 도서관 옆으로 걸어 내려오거나 장정 100여명이 짊어질 만큼 거대한 새끼줄을 들고 교문을 지나는 행사를 개최했다.

1996년 5월 3일엔 개교91주년 석탑대동제가 열렸다. 공과대·애기능 동아리연합회 개막제에는 반핵 퍼포먼스와 핵문제에 대한 토론을 했다. 폐막식은 성북경찰서 전경의 촌극공연과 학생들의 막걸리마시기 대회로 이뤄졌다.

예나 지금이나 축제는 각각 떨어져 생활하던 구성원들이 학업에서 벗어나 함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정태환(인문대 사회학과) 교수는 “축제 땐 평소 분산되어 있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기며 소속감과 일체감 등을 느낀다”며 “그런 의미에서 축제는 학업을 잠시 떠나는 단순 스트레스 해방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 (자료제공:안암기록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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