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편중주의자(technomanian)와 과학기술공포주의(technophobian)사이의 오랜 전쟁 끝에 과학기술편중주의의 대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에 “막대기의 한쪽을 잡는다면, 다른 한쪽도 잡은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과학기술편중주의자들은 축제의 샴페인을 터트리기 전에 큰 문제에서 한군데 연관이 되면 이미 모두 연관된다는 것을 알아야할 시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기술편중주의자들은 소셜네드워크서비스(SNS)의 야누스적인 얼굴을 인식해야만 한다.

 

 1930년 최초로 BBS(Bulletin Board System)으 로 시작한 소셜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은 과학기술편중주의자 들의 지속적인 지지 속에 발전하여 직장동료들간 의사소통의 목적으로 1978년 CBSS(Computer Bulletin Board System)가 도입되었다. 이후 인터넷의 급격한 보급으 로 ‘Myspace’,‘Facebook ’, ‘Foursquare’ 그리고‘Twitter’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의 등장과 애플사의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붐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러한 SNS는 이 시대에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SNS는 지구촌을 하나의 가족으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공헌을 하였고, 서로의 정보공유와 교류를 도와 지구촌의 관심을 짧은 시간 내에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SNS는 최소의 비용으로 정보소통을 극대화시켜 정보공유의 비용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최근에 아랍권 국가에서 장기 독재집권에 반대하여 일어난 연쇄적인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의 촉진에 SNS가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편중주의자들은 그들이 승리의 자축을 하는 SNS의 터널비젼(tunnel vision)이 가진 야누스적인 다른 얼굴의 의미도 인식해야만 한다. 터널 속에서 캄캄한 주변의 부분을 보지도 못한 채 오직 터널의 마지막 밝은 출구만 보고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달려온 과학기술편중주의자들은 이러한 SNS가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과학기술공포주의자들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SNS가 전 세계에 사이버 불링의 공포를 확산시키고, 온라인상에 올라온 수많은 악플을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보고 퍼트린다. 때문에 완전히 삭제가 불가능하고 순식간에 무서운 무기로 돌변하여 개인을 파멸시키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우리사회는 SNS에 대해 네이티브아날로그인(native analogouian)들과 네이티브디지탈인(native digitallian)으로 구성된 것 같다. SNS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해 이 둘은 두뇌의식구조를 달리하는 것 같다.

 SNS에 대한 하드웨어적인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인 지식의 차이에서 우리는 네이티브디지털인이나 네이티브아날로그인에 속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문 네이티브아날로그인들은 첨단기술시대에 살면서 그것을 풍부하게 누리는 네이티브디지털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와 앞으로 더 일어나게 될지 그리고 그결과가 얼마나 중대할지 그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SNS의 세계 속에서 네이티브디지털인들은 또다시 과학편중주의자와 과학기술공포주의자로 나누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 3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중일지도 모른다.

 두 얼굴의 야누스 SNS가 과학편중주의자들의 축제의 잔 속에서 ‘야누스의 미소’를 짓고 있다. 네이티브아날로그인들은 SNS에 대한 무지로 두 얼굴을 가진 SNS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고 네이티브디지털인들 또한 그들이 애써 만든 SNS의 희생물이 되어 과학기술편중주의자에서 과학기술공포주의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오직 터널 끝의 밝은 부분만 보고 끝없이 달려온 과학편중주의자들은 SNS가 가지고 있는 다른 한쪽의 얼굴도 보려고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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