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요사이 한국사회의 화두다. 고작 1000원짜리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조그만 회사가 한국사회 전체를 뜨거운 이념논쟁으로 달구고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연봉 7000만 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이에 대해 민주당은 “왜곡사실 유포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과거 현대차 파업이 지속될 때마다 그들의 연봉은 얼마라더라, 이번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예상된다 등의 논지는 반복되어 언론에 보도되어 왔다. “현대차의 볼트 조이는 노동자가 받는 연봉이 6000만원이 넘는다더라”는 뉴스는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의 상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노동운동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이들의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장을 조금만 보태면 혐오에 가깝다.

 프랑스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프랑스가 자랑하는 고속열차인 떼제베에 시민들이 콩나물처럼 갇힌 채, 열 몇 시간씩이나 거북이 운행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그 열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거의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이 불평을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충고하고 타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한다면, 지금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 힘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우리 시민의 권리까지 빼앗게 되는 것을 왜 모릅니까? 노동자의 권리부터 지켜져야 시민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유럽의 사고는 특이하니까’라고 당신이 이야기한다면, 이건 어떤가? 프랑스 배우 줄리 델피가 출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2 Days In Paris)>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에 좀 늦게 들어온 딸에게 엄마가 이유를 묻자, 딸이 답한다.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니?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이른바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나 나올 교양 없는 짓이라는 은근한 비난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을 받는 미국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따뜻한 눈으로 노동활동을 바라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08년 미국 배우노조는 파업을 진행하는 작가노조를 지지하고 골든글러브 시상식 참석 거부를 결의하였으며, 일부 톱스타도 시위에 동참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숲에는 기업과 같은 큰 나무도 있지만, 힘없는 노동자와 같은 작은 나무도 있다. 만약, 작은 나무가 큰 나무들에 의해 빛이 가려 모두 죽게 되면 종국에는 그 숲은 황무지가 될 것이 뻔하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 사회를 조금씩 평등한 구조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도 중요한 것이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 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
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하늘로 간 故최고은 작가. 그와 같이 조그맣지만 아름다운 나무들이 큰 나무들과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되어가기를 희망해 본다.

<Still Not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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