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은 세상의 사물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부르는 행위 또는 그 명칭을 뜻한다. “색깔만 하더라도 색마다 이름을 붙여주고 나서야 색깔에 대한 개념이 생성된 것이다”라는 강범모(문과대학 언어과학과) 교수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즉, 호칭의 역할은 불려지는 사물의 개념화에 영향을 끼치며 지칭하는 사물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다.

나라의 명칭인 국호는 호칭의 한 종류다. 국호 Korea의 호칭 변경 문제는 학술대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고 다음에서 실시한 네티즌 여론 조사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남북공동학술토론회에서 북한의 문영호 조선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은“8백년 동안 국호표기는 Corea 였으나 일제가 Japan의 J자보다 뒤로 빼기 위해 C를 K로 바꿔 현재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현재 6.15 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이하 통일연대) 학술연구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다.

한국 국호는 17세기 무렵에는 Corea, Coree 등으로 정착된 것이 18세기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Corea와 Korea가 병행 사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일합방을 계기로 Korea로 단일화됐다. 통일연대 측은 단일화 과정에서 일제가 고의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언어와 호칭이 단순히 어떤 사물과 대상을 일대일로 규정하는 기호라기보다는 그 속의 인간의 감성과 지향하는 측면이 담긴 기호로서 호칭을 고려한 관점이다.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은 “Corea라는 표기는 새로운 세계와 접하려는 탈미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름과 호칭의 상관관계에 따라 국호 변경 시 따라오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지적도 있다. 대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고유 내용인 의미를 형태로 나타난 것이 이름이다. 소쉬르(Saussure)의 ‘일반 언어학 강의’에 따르면 Sign(기호)은 언어기호를 나타낸다. 언어 기호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고 다른 단위에 의해 대치될 수 있는 문장의 최소단위이다. 그에 비해 Symbol(대상)은 내용 형식을 상징한다. 현재 국호 변경문제를 대입하면 똑같은 Symbol에서 Sign만 바뀌게 된다. 결국 유관성이 깨져버리는 결과다. 본교 유석훈(문과대학 언어과학과) 교수는 “외국에서 Korea와 Corea를 서로 다른 나라로 인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이름을 바꾸는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파급효과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습적으로 불리는 호칭의 사용적 측면을 볼 때 Korea국호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있다. 강 교수는 “Korea라는 언어는 관습적 의미를 담은 것일 뿐 굳이 Corea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전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감성을 담거나 내용과 기호의 상관 관계를 갖고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측면에서 고려되는 호칭은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를 반영하기도 한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두 정상간 대화에서 호칭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easy man’이라고 지칭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흔히 ‘쉬운’이란 뜻으로 해석되는 easy는 결국 노 대통령을 만만하게 보는 의미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를 호칭의 문화적 차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홍준표(울산대 의과대학)교수는 “미국은 한국에 비해 서로를 존대하지 않고 이름으로 호칭하는 문화, 또 서로를 편안하게 생각하며 대화하는 문화다”라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문화가 가져온 호칭이라고 설명한다.

호칭은 ‘언어의 도구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는 2005년에는 첫 민간교도소가 문을 연다. 이 민간교도소는 기존의 교도소와는 죄수에 대한 호칭이 수형 번호가 아닌 죄수의 이름이다. 사단법인 아가페 측은 “재소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얼마간의 자유를 주는 것이 오히려 교정효과를 높여 재사회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사용된 이름 호칭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프라이드와 인권을 담고 있다. 인간만이 지니는 상징성을 극대화한, 즉 ‘언어의 도구화’를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집약적 명사인 호칭. 지금 이 순간에도 불려지고 있는 명사는 언어학적 요소와  결합한 채 호칭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