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정하여라. 영원한 민주화 행진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광주는 단순한 도시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기억과 상징 그 자체다. 그 기억과 상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실상 최초의 작품이 1988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발표된 홍희담의 중편 ‘깃발’이다. 계급적 관점과 반제국주의 시각에서 광주 항쟁 최후의 시기를 다룬 이 작품은 문학적 완성도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문학적 상징으로 평가받기 충분하다.   

 
작가 황석영의 첫 부인으로도 유명한 바로 그 홍희담이 ‘깃발’을 포함한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실은 첫 소설집 <깃발>(창작과 비평사)을 내놓았다. 도청을 사수하다 체포되어 고문으로 뇌를 다치고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인물과 그를 돌보는 가족들, 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투신자살을 하고만 여성운동권의 대모 이야기. 항쟁 기간중 임산부의 죽음을 보고 그 무렵 임신한 자신의 아이를 미워하다 죽은 주인공.

 비극을 경험한 이들에게 너무도 선명하게 남겨진 상처와 살아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죄의식이 교차하는 작품들이다. 계급이나 제국주의 모순 같은 다분히 사회과학적이고 구조적인 틀에만 갇혀 있지 않고, 등장 인물들이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서의 80년 광주, 어떤 의미에서는 일상으로서의 80년 광주를 형상화한 것이 큰 특징이다.  

                                                                   
 한편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품인 심윤경의 장편 <나의 아름다운 정원>(한겨레신문사)은 한 가족의 1977년부터 81년 사이의 일을 담고 있다. 서울 인왕산 아래 동네에 사는 소년 동구는 난독증을 겪고 있다. 늘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구박만 받는 어머니, 사랑스런 동생 영주, 그리고 동구의 난독증을 치료해주며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선생님 박영은이 있다. 행복보다는 불행의 그림자가 완연한 동구의 가족 배경과 그 그림자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박영은 선생님. 

 그런데 광주가 고향인 박영은 선생님은 1980년 5월 즈음 고향집에 다니러 갔다가 희생되고 만다. 박영은 선생님의 죽음과 청와대 가까운 동네에 사는 동구가 겪은 12·12 군사반란 사태는 이 작품을 단순한 성장 소설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지만 어린 소년 동구의 삶조차도 시대의 비극과 얽혀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한 시대의 그 누구라도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작가 심윤경 자신이 바로 작중의 동구가 사는 인왕산 아래 동네에 살았다. 그리고 작가 홍희담은 78년부터 광주에 살기 시작해 광주항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것은 물론 사망자, 실종자, 부상자 가족을 돌보고 양심수 옥바라지를 하면서 80년대를 보냈다. 두 작가는 각자의 공간과 연령대에서 나름대로 체험한 80년의 봄을 각자가 겪은 만큼 솔직하게 이야기한 셈이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직접적이고 생생한 체험이었든, 어린 시절의 간접적이고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이든, 80년 광주가 일종의 시대 통합적인 집단 체험이라는 걸 위의 두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체험이란 이제 과거완료의 기억에 불과할까? 아니면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 상황일까? 역사라는 것에 온전한 의미의 단절이란 없다고 본다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아닐까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도, 역사에 저지른 죄악에도 시효란 없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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