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서울시의 무상급식투표가 끝났다. 25.7%라는 저조한 투표율로 결국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아니, 아직도 무상급식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까지도 있다. 이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논란을 일으킨 무상급식문제의 본전이라도 찾으려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라도 그려봐야 할 것 같다.

지난 한달 간 우리사회의 담론에서는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인 '현재의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연 무상급식이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망국적 복지포퓰리즘, 아이에게서 밥을 빼앗지 말라, 나쁜 투표와 같은 감각적인 구호들이 난무했지만, 정작 현재 우리사회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과연 무상급식이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무엇을 하자는 주장과 말자는 주장은 있어도, 정작 그것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근래 거의 모든 이슈들을 다루는 우리사회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논의도 하자는 주장과 안 된다는 주장은 강한데, 정작 그 사업이 현재와 미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논의가 담론의 중심이 된 적이 없다. 반값등록금에서도 과연 그것이 우리사회의 어떤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그저 하자는 주장과 안 된다는 주장만 서로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바로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집단사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 다양한 방안과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이 비합리적으로 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오히려 지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로 똘똘 뭉쳐서 만든 집단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는 의사결정을 할 때 더 잘 일어난다. 우리사회처럼 집단응집력이 강한 문화에서 서로 잘났다고 믿는 보수와 진보가 구국의 일념으로 일을 하니 집단사고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조건은 다 갖춰진 형국이다. 집단사고에 빠지기 시작하면, 우선 자신들은 정의의 편이고 반대쪽은 무조건 나쁜 놈들이라고 믿기 시작하고,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이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착각에 빠진다. 정의의 사도인 수퍼맨이 악당에게 지는 수퍼맨 영화는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리고 나면 자신들의 주장이 과연 맞는지 안 맞는지는 전혀 따져보지 않는다. 자신들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 뭐든지 해도 되고 뭐든지 해도 잘될 거라고 착각한다. 잠깐 법을 위반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좋은 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착각한다. 외부에서건 내부에서건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면 다 간첩, 배신자, 악당이 된다. 그저 자신들의 주장대로 하자고만 무조건 주장하며, 하지말자는 쪽은 모두 정의롭지 못하고 불손하게 보인다. 이것은 집단 내외부에서 반대의견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기에 결국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된다.

집단 사고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상 논의의 시작은 해결할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확실히 규정되어야 해결방안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불행이도 무상급식도, 4대강 사업도, 반값등록금도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왜 해야 되는지는 실종된 서로를 비난하는 싸움만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제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지 말자. 무상급식을 하자는 주장도 하지 말자는 주장도 모두 나라는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집단내부에 우리의 믿음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배신자를 키워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도 항상 나를 괴롭히는 배신자를 가져야 한다. 그 배신자는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한가요?"

허태균 문과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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