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지난 여름날, 조선족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 연변거리를 취재하러 간 일이 있었다. 거리에는 뜻 모를 중국어만 들려왔고 사진을 찍자 경계하는 눈빛이 내리쬐는 햇볕만큼 따갑게 느껴졌다. 각종 시민단체, 교회, 지역 언론사 심지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는 슈퍼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냉대만 받았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들어간 교회에서 한 목사님을 만났다.선약도 취소해가며 인터뷰에 응해 준 목사님에게선 심지어 예수님 같은 후광이 비쳐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나도 모르게 오늘 느꼈던 서러움을 털어놓다보니 목사님은 왜 인터뷰를 응해줬을까 궁금해졌다. 목사님은 “내겐 잠깐 시간을 내는 별것 아닌 작은 일이지만 학생에겐 절실함이 느껴졌다”며 “그 ‘절실함’을 저버릴 순 없었다”고 답했다. 오랫동안 오갔던 말보단 마지막 그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절실함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작은 도움을 나눠주는 아량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했다.

오늘도 뉴스에선 누구든 혼자가 아니라고 온 몸으로 말해주는 이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 소식을 들 으면 모두들 마음까지 따뜻해진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 한구석이 꽁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누굴 도울 수 있는 처지일까…’ 그럴 때면 언젠가 읽었던 책의 “모두가 부러워하는 젊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은 누구보다 ‘부자’이다”라는 문구가 불현듯 반기를 들고 나선다.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무거운 짐을 짊어진 노인부터 구걸을 하는 노숙자까지 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을 참 많이 마주친다. 이럴 때면 나서서 도울 용기까지 가진 부자는 아직 못 된다는 핑계와 저들의 절실함을 잡아줄까하는 고민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바로 그때, 내가 받았던 ‘작은 도움’이 한 쪽에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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