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 이상훈 씨
‘학생과 교수가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에는 불가피하게 휴업령이 내려졌다. 학생사회는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로 혼란스러웠다’, ‘막걸리 찬가는 사발식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다’, ‘故앙드레김이 만든 응원단복을 입고 응원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응원단원으로 활동했던 이성훈(***학과 89학번) 씨가 풀어놓는 그 시절 정기전과 학내 이야기는 2011년의 고대생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고려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이성훈 전 응원단장이 입학했던 1989년 봄은 유난히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던 때였다. 학생들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이준범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했고, 일부 교수들도 수업 진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휴교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1987년 6월항쟁 때 보여줬던 대학생들의 민주화 열망이 1989년을 지나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고 학내에는 시위 문화가 정착돼 있었죠” 한번 집회를 열면, 민주광장으로는 인원을 수용할 수 없어 지금은 중앙광장이 된 대운동장에 5000 여명 이상이 모이곤 했었다. 이처럼 당시 학생들에게 집단 행동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예나 지금이나 선배가 후배를 이끌고 학교 인근 막걸리 집에서 술을 마신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술이 얼큰히 취하면 자연스럽게 모르는 옆 사람과도 함께 응원곡을 부르는 건 다반사였다. 지금은 정기전 기간에만 잠깐 불리는 응원곡이 당시에는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때 가장 인기 있던 응원곡이 1981년에 만들어진 ‘엘리제를 위하여’하고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지야의 함성’, ‘무인도’, 기존에 있던 ‘응원가’의 가사를 고쳐 부른 ‘막걸리찬가’ 등이었지” 그러나 이성훈 씨가 기억하는 최고의 응원곡은 다름 아닌 교가다. 당시 본교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게 교가였다. 1990년대 말까지의 학번들 사이에서는 ‘교가를 모르면 진정한 고대생이 아니고, 교가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도 고대생이 아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95년 정기전에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연세대 교가를 부르던 중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는데 일순간 잠실 운동장이 조용해졌다. 이때 고대생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얼마나 부러웠으면 연세대에서 교가 부르기 운동이 펼쳐졌을 정도였다니까요”

민족고대의 정신을 담은 응원단장의 두루마기에도 남다른 사연이 담겨있다. 1985년, 본교 응원단에서 두루마기로 응원복을 처음 만들었다. 당시 연세대 응원단은 두루마기를 입고 나오는 고려대 응원단장의 모습을 회상하며 아직도 ‘우리가 당했다’라고 말하곤 한다. 두루마기로 시작한 응원단복의 변화로 1989년에는 갑옷 스타일의 응원단복이 만들어졌고 1992년에 모든 응원단복이 완성돼 지금에 이르게 됐다. 1999년도에는 연세대 응원단과 함께 故앙드레김에게 찾아가 응원단복 디자인을 받기도 했다. 현재 연세대 응원단복은 그때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조금 수정한 것이고 고려대는 앙드레김 디자인이 아닌 더 화려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정기전과 응원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와 학생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프로스포츠가 발달하지 않았다. 이 시절 정기 고연전은 전 국민이 함께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 역할을 했다. 언론사마다 취재를 하느라 북새통이었고 텔레비전에도 정기전 경기장면이 방송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인근 여중, 여고에서 소위 ‘오빠부대’로 불리는 여학생들이 응원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연세대 응원단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고려대 응원단을 좋아하는 학생들 사이에 다툼이 있기도 했었죠(웃음)” 인기만큼이나 응원문화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응원문화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학생회에서는 ‘고려대 내에 소비적인 문화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심지어 응원단이 준비하는 축제인 ‘지야의 함성’(지금의 ‘입실렌티’)이 1980년대에는 7년간 열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성훈 씨는 오늘날의 대학 사회에서 단체가 가지는 힘이 잊혀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응원문화, 정기 고연전은 고대생과 연대생만이 누리는 하나의 혜택이고 문화라는 것을 알고, 이를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과거 프로스포츠가 없었던 시절처럼 정기전이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순수한 대학생들의 스포츠 축제로 잘 가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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