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전특집] "정기전 지는 건 화나지만, 다른 대학에 지면 더 속상했죠"
[고연전특집] "정기전 지는 건 화나지만, 다른 대학에 지면 더 속상했죠"
  • 위대용 기자
  • 승인 2011.09.18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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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전 농구 전성기의 주역 김병철(체육교육과 92학번)석주일(연세대 신문방송학과 92학번) 인터뷰

▲ 정기전이 열리는 잠실실내체육관 앞에서 김병철(왼쪽)과 석주일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 김진현 기자
1992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요즘, 나는 1995년 농구대잔치를 기억한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만나는 날이면 넘치는 관중으로난리가 났다. 물론 지금도 고연전에서 농구경기는 항상 만석이지만 그때는 수준이 달랐다. 양 팀이 붙으면 팬들이 체육관 창문으로 들어가고, 코트라인까지 빈공간이 없을 정도로 체육관이 꽉 들어찼다. 그땐 그랬다.

농구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1992년부터 1995년. 당시 라이벌로 맞붙었던 ‘피터팬’ 김병철(체육교육과 92학번)과 석주일(연세대 신문방송학과 92학번)을 만났다. 한 때는 라이벌이었지만 지금은 같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였다. 정기전에 대해 김병철은 “전쟁이지, 전쟁”, 석주일은 “입장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라며 입을 맞췄다. 의미는 같은데 표현은 달랐다. 2011년 정기고연전을 맞아 공동 인터뷰를 고대신문 편집국장과 연세춘추 김정현 편집국장이 함께 진행했다.

- 꽤 오래된 인연이네요.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아는 사이죠
김병철(김) | 대방초등학교 동창이에요. 그땐 농구명문이었는데 지금도 그런가?
석주일(석) | 지금은 좀 쳐졌지. (전)희철이도 같은 초등학교 나왔어요. 그러다가 중학교를 서로 다른 데로 갔죠. 제가 휘문중으로 가고 병철이는 용산중으로 가고.
김 = 원래 대방초 나오면 용산중, 용산고로 가는 게 코스인데, 쟤는 휘문중으로 튄 거에요. 선배들 무섭다고. 그 때는 워낙 기강이 세서 선배들 눈치 많이 봤죠.

- 대학와서 다시 라이벌로 만났잖아요. 사이는 어땠나요
석 |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경기에서 만나면 당연히 서로 이기려고 치열하게 싸우죠. 근데 밖에서는 그럴 필요 있나요. 만날 같이 술 먹고 놀고, 나이트도 가고 그랬죠.
김 | 그때 고려대, 연세대 들어오는 선수가 전부 농구로 날고 긴다하는 애들이에요. 대표팀에서도 자주 만나니까 서로 다 친했죠.

- 당시 양 팀 인기는 어느 정도 였습니까
석 | 길거리를 돌아다니질 못했어요. 팬들한테 혼날까봐 여자 친구하고 손잡고 돌아다니는 건 꿈도 못 꿨고. 그때 연세대 숙소가 학교 밖에 있었는데 300명 정도 되는 팬이 항상 진을 치고 있었어요. 문이 하나밖에 없어서 창문으로 몰래 나간 적도 있어요.
김 | 고려대는 학교 안에 합숙소가 있었는데 다행히 문이 여러 개 있어서 창문으로 나갈 정도는 아니었죠. 인기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많아서 CF제의도 자주 들어왔어요. 언젠가는 ‘헝그리베스트5’라고 만화 주제가도 불렀다니까요.

- 대학농구의 인기가 그렇게 높았던 이유가 뭔가요
석 | 다양한 이유가 있죠. 만화 ‘슬램덩크’도 있었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도 있었고. 거기다 대학팀이 실업팀을 막 이기고. 그게 다 합쳐지니까 ‘펑’하고 터진 거죠.
김 | 대학팀이 실업팀을 이기는 게 말이 안 됐죠. 게다가 고려대, 연세대 라이벌 구도도 흥미진진했고. 연세대가 1995년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했어요. 그 다음해에 고려대가 농구대잔치 정규리그에서 전승 우승했죠. 양대 산맥이었어요. 그 시절엔.

- 대학팀이 실업팀을 이긴다는 게 말이 안 돼 보이는데
석 | 그땐 정말 죽기 살기로 훈련했으니까 가능했죠. 지금은 대학팀이 프로팀 상대도 안 되지만.
김 | 지금은 프로팀이 용병 빼고 해도 20점씩 차이나던데. 지금 대학선수들이 예전에 비해서는 더 실력이 좋은 편인데 우리 대학시절보다는 못하는 것 같아요.
석 | 그렇지. 우리가 지금 선수보단 잘했지. 왜냐하면 우린 만날 실업팀 선수하고 경기 뛰었는데 요즘은 대학선수끼리만 경기하니까.


두 선수는 1992년에 대학에 입학해 1996년에 졸업하기까지 정기전에서 4번 맞붙었다. 전적은 2승 2패. 1, 2학년에는 석주일이 3, 4학년에는 김병철이 이겼다. 당시 농구대잔치에서 명경기가 자주 나왔지만 두 선수는 정기전만큼 치열한 경기는 없었다고 말한다.

-  지금도 정기전은 치열한데, 당시에는 어느 정도였죠
석 | 경기에 지면 우리가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목숨 걸고 뛰었죠. 어느 정도였냐면 경기 중에 패싸움을 하면 무승부에요. 그래서 지고 있으면 막 싸움을 걸고 했어요. 무승부 내려고. 이기고 있는 쪽은 상대가 시비 걸까봐 도망 다녀야 돼요.

- 정기전에서 졌을 때 분위기는 어떤가요
김 | 욕 나오죠. 술도 마시고. 그때는  서로 어떤 기분인지 아니까 감독, 코치도 뭐라고 안 해요.
석 | 그래도 정기전에서 지는 건 분하고 자존심 상해도 금방 잊어요. 상대가 라이벌 고려대니까.
김 | 경기종료 전까지는 이기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다가도 경기 끝나고 나면 인정하는 거죠. 할 거 다하고 졌는데 어떡하겠어. 오히려 다른 대학에 지기라도 하면 난리 나요. 그날은 바로 집합이죠.
석 | 맞아. 다른 대학에 지는 건 치욕이었지, 치욕. 정기전은 져도 선배가 안 때려요. 근데 다른 대학에 지면 그날은 일단 맞을 각오부터 해야 되니까. 그만큼 그 당시 연세대, 고려대 농구는 막강했죠.

- 고려대와 연세대는 오랜 라이벌인데 서로 부러웠던 점이 있었다면
석 | 고대 분위기가 부러웠죠. ‘모여라’하면 한명도 안 빠지고 다 모이고. 연대는 그런 거 없거든요. 모임 나갈래 여자 친구 만날래 하면 우린 고민부터 하는데 고대는 무조건 가더라고요.
김 | 무조건 가야지. 한 번 안 가면 다음에 모일 때까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니까. 혼자 도태되는 느낌을 만들 달까.
석 | 신기한 게 고대 사람들 모여서 식사하고 그럴 때 제가 전화하면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요. 화장실도 안 가고. 선배 앞이라 감히 전화를 못 받는데. 4년 동안 각 학교의 특징이 몸에 배는 거지. 이번에 ‘OB고연전’ 할 때도 준비하는데 우린 한 번 밖에 안 모였어.
김 | 우린 엄청 만났지. 만나면 또 술(웃음). 경기 일주일 전에는 ‘몸 관리해야 되니까 술 마시지 말자’라고 해놓고 또 마셨어.
석 | 고대는 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이 부러워요. 대신 연대는 자유롭고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요. 만약에 두 학교가 섞이면 진짜 웃길 거야.

- 대학시절,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김 | 졸업했을 때(일동 웃음). 다 필요 없고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4학년 때 농구대잔치 마지막 경기 하자마자 짐 싸서 나왔어요. 정기전에 대한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군대에서 전역 기다리는 것처럼 졸업을 기다렸다니까요.
석 | 저는 대학 때 별로 즐거웠던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정기전 승리하면 기쁘긴 한데 그게 잠깐이에요. 보름 가나? 또 다음 대회 준비해야 되고.

- 훈련량은 어느 정도 였습니까
김 | 고대는 연대에 비해서 덜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연대가 두 배는 더 많이 했을 걸?
석 | 우리는 야간훈련까지 했으니까. 고대 얘기 들어보면 출퇴근 하면서 훈련했대요. 우린 만날 합숙하면서 엄청 훈련했는데. 근데 이제 밖에서 볼 때 연대는 설렁설렁하는 거 같고, 고대가 훈련 많이 하는 것처럼 보는 거지. 이미지 때문에. 억울했죠. 고생은 우리가 더 많이 하는데.
김 | 그래도 그렇게 훈련량 차이가 나도 정기전은 또 모르는 게 그날 컨디션이 더 중요하거든요. 어차피 실력은 서로 비등비등하니까.
석 | 한마디로 정신력이죠.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해야 돼요. 내가 3, 4학년 때 진 게 실력차이도 좀 있었지만 ‘이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거든요. 그건 정신력에서 이미 진 거죠.


이 둘은 당시 양 팀의 인기는 다른 4개 운동부 인기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석주일은 “다른 운동부가 우리를 시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1996년, 프로농구가 출범하고 인기가 지속되는 듯 했지만 열기는 점차 식어갔다. 프로농구는 프로농구대로, 대학농구는 대학농구대로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 그렇게 인기가 대단했는데 왜 갑자기 인기가 식어버린 걸까요
김 | 1990년대에 농구협회가 돈을 엄청 벌었어요. 경기만 했다하면 체육관이 만원이니까. 그때 번 돈으로 체육관도 좀 짓고, 인프라를 구축 해야 했는데 그게 안 됐잖아요.
석 | 국제대회도 많이 유치하지 못하고 전부 아랍 쪽으로 다 뺏겼지. 야구, 축구 보면 전부 국제대회 나가서 관심 끌고 확 떴는데 농구는 그런 게 없어요. 농구자체가 보여줄 게 많이 없어진 것도 있지만. 예전엔 흥미진진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죠.
김 | 그리고 비시즌일 때 농구선수가 예능프로그램에 좀 나갈 필요도 있어 만날 우지원만 나갈 게 아니라니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나가서 농구 홍보를 해야 돼.

- 그래도 6월에 했던 OB고연전은 반응이 뜨거웠죠
김 | 약간 아쉬웠어요. 반응은 대단했는데 별로 효과를 거두질 못했어요. 잠깐 반짝하고. 그때 붐을 겨울 시즌 시작할 때까지 쭉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석 | 그때 우리가 지긴 했는데 다시 옛날 유니폼을 입고 뛴 게 진짜 좋았어요. 예전 대학농구의 모든 게 이제 전부 추억이거든요. 팬들한테도, 선수들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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