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고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은 지갑을 한 번 열어보자. 다행히(?) 만 원 지폐가 지갑에 있다면 인자하게 웃고 계신 세종대왕의 뒷면을 확인해 보라.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것 같긴 한데 뭔지는 모르겠던 바로 그 지폐 속의 도안이 본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30호 혼천시계의 일부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만 원권 한 장에는 역대 군왕 중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과 우리 과학사에 길이 남을 실존 유물 혼천시계가 함께 있다. 그 한 장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모두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혼천시계의 문화재적 가치는 우리보다 외국에서 더 쳐주고 있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 대부분의 소장품이 유실됐음에도 불구하고 혼천시계는 무사히 보존되어 1960년 미국 예일대의 과학사 교수 프라이스에 의해 조사되면서 우리나라 과학문화재 중 세계 과학사학계에 가장 잘 알려진 문화재가 됐다. 영국의 유명 과학사가인 니덤(J. Needham) 박사가 그의 저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혼천시계의 모조품을 세계 유명 과학박물관들에 전시해야 한다며, 이 혼천시계가 동양의 오랜 시계 제작기술 전통과 서양의 기계시계 제작기술이 섞인 아주 특징 있고 자랑스러운 유산이라고 기술한 것만 봐도 혼천시계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니덤 박사는 혼천시계를 그렇게 극찬한 것일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혼천시계는 말 그대로 시계다. 천문을 관측하는 혼천의와 시패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조합되어 있어 혼천시계라 불린다. 이게 과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조선시대 천문시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물시계의 원리를 이용한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시계인 자명종의 원리를 조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천문시계의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혼천시계는 세계 시계 제작기술사에서 독창적인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받기 충분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이 있다면, 이렇게 자랑스러운 유물이 아직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데에는 인촌 선생의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인촌 김성수 선생이 그 당시에 무려 집 한 채 값이었던 거금을 주고 혼천시계를 구입한 것이다. 집 한 채 값! 이러한 인촌 선생의 과감한 결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찬란한 문화유산을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설명도 들었으니 박물관 2층 역사민속전시실에 있는 놀라운 유산 혼천시계를 한 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본교 박물관 학예사 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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