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미 30년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Cathay Pacific을 타고 런던을 경유하여 독일의 쾰른-본 공항에 내린 것이 1982년 3월이었다. 쾰른 대성당 앞에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쳐다보는 사이 600마르크를 소매치기 당하고 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단 라인강변 호텔에서 첫밤을 보냈다. 백지어음의 상관행이 숙성되고 각종 상사제도의 관습법을 만들어낸 한자동맹의 상업도시 콜로니아! 솔직히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불안감과 설레임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시점으로부터 약 8년반 동안 나는 이 도시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 학기의 어학과정을 마친 후 본격적인 법학수업이 시작되었다. 쾰른대 법대는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고 한스켈젠과 니퍼다이의 뒤를 이어 독일을 대표하는 법학자와 실무가들이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커리큘럼은 우리나라 법과대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오면 박사과정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는 석사학위를 마무리 짓지 않고 오는 바람에 학부과정을 다시 밟아야 했다. 민사소송법의 세계적인 석학 바움게르텔 교수의 딸 Ursula와 같은 반에서 아르바이트 게마인샤프트(신입생 안내강좌)를 시작하였다. 첫 학기는 민법총칙, 형법총론, 헌법을 들으며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2번째 학기부터 시작된 연습과목이었다. 연습과목은 초급과 고급으로 나뉘어지고 다시 법영역별로 사법(私法), 형법(刑法), 공법(公法)으로 3분되는데 시험문제는 모두 신문사설 만한 장문의 케이스였다. 문제유형은 나에게 커다란 도전을 요구하였다. 8번째 시도만에 간신히 민법초급연습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 후 나의 공부에는 가속이 붙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성적도 좋아져 독일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1982년 가을에 시작된 학부과정은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3개과목 - 사법, 형법, 공법 - 시험에 합격하면서 1987년 여름에 끝나게 되었다. 지난 5년간의 세월이 일순간에 스크린되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은 해방감, 허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 법제사 시간에는 독일 학생들과 함께 디게스타(학설휘찬)를 읽어 나갔고, 수많은 교수님들로부터 주옥같은 강의를 들었다. 내 전공인 상법 뿐만 아니라 민법, 공법, 형법, 소송법을 공부하였고, 나아가 법원, 수형시설, 상공회의소 및 공공관청에서 실습 및 견학을 할 수 있었다. 유서깊은 하우스맥주집 페프건(Päfgen)에서는 동료학생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1987년 가을 학기부터 시작된 박사과정은 학부때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훨씬 단조로웠다. 독일대학의 큰 특징은 교육의 비중이 학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사법의 대가이신 비더만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논문을 다져나갔다. 박사과정때에는 다소 시간여유가 있어 가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다. 생활비에 어려움이 발생할 때에는 쾰른 대성당 앞 역사에 나가 택시운전사를 하였다. 쾰른역에서 손님을 기다린 이유는 이 도시의 대부분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되어 있어 어디든 길이 간단하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헝가리에서 온 짚시를 태운 적이 있었는데 짚시들은 자주 이동하는 바람에 샤워를 하지 않아 차안에 냄새가 진동하였다. 지금도 그 역겨운 냄새가 생생히 느껴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때 일을 되새길 때면 곧 즐거운 추억으로 바뀐다. 1990년 6월 구두시험을 끝으로 나의 8년 반의 유학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쾰른이라는 도시에서 나는 박사학위도 얻었고, 아빠도 되었다. 나는 특히 이 도시의 알트쉬타트를 좋아한다. 언제든지 방학때 이 도시에 다시가면 나는 꼭 내가 첫 밤을 보냈던 라인강변의 그 작은 호텔로 간다. 귀소본능이다. 그리고 첫날밤 호텔창문으로부터 내려다 보았던 그 좁은 골목을 다시 응시하곤 한다. 상적 색채가 물씬대는 알트쉬타트, 쉴더가세, 호에쉬트라세, 린덴탈, 그리고 처음 둥지를 틀었던 에퍼렌 기숙사, 수없이 산책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던 쉬타트발트, 카니발 때 얼굴에 분장하고 거닐었던 이 도시의 거리들. 나의 제 2 의 고향이며 내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인 쾰른, 쾰른대학이여 영원하라!
김정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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