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공통된 특성의 축으로 묶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고다르 감독은 자신의 매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고정된 내용과 형식의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화 실험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영화적 원리들과 자신의 메시지를 영화 형식의 도전과 탐구를 통하여 표현해낸다.

 

초기 고다르 감독 영화 미학의 특성은 독일의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 이론과의 관계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서사극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기보다는 무대 위 사건의 재현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대 위에서 사실성을 박탈한다. 그래서 가능한 생소하게 보이도록 하여 관객은 현실이 아닌 연극을 보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소외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고다르 감독은 서사극 이론을 자신의 영화 미학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영화의 선형적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고 영화 매체의 기계적 정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고전적인 영화 미학의 기본 개념인 연속성과 환상을 근간으로 하는 사건들의 인과관계의 선형적 논리와 관객들의 심리적 동화 작용을 전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관음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마치 관객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하는 등장인물, 영화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연출 방법, 영화 조명의 광원을 드러냄, 영화 화면의 깊이의 환영을 피하기 위해 수평으로 길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 등은 고다르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야기 전달과 특별한 감정적 효과에 주안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을 담아내는 매체로서 영화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다르 감독의 편집 기법은 각 쇼트가 단편화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내적 관계를 형성하는 일종의 꼴라지(collage)적 방식을 택하고, 이것은 블록 구조(block construction)와 결합하여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위한 대표적 방식으로 발전한다.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1962년>는 이러한 고다르 감독의 초기 영화미학의 특징이 전적으로 자리 잡은 영화이다.

<비브르 사 비>는 남편과 이혼한 나나라는 젊은 여성이 어떻게 파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고다르 감독은 잿빛으로 그린 도시 파리에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현대의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메마른 관계인 소외와 성의 상품화를 애상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고다르 감독은 성의 상품화를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서 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일로 인식한다. 그래서 성의 상품화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동시에 사회적 의미와 해석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다르 감독은 <비브르 사 비>에서 할리우드 영화 미학의 근간인 연속성과 환상의 개념을 파괴하여 영화로부터 관객을 독립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2개의 독자적 장으로 이루어진 블록 구조는 브레히트적인 특성을 보여주며, 검은 바탕의 빈 화면 위에 자막으로 소제목만을 적은 각각의 장들은 분절 효과와 단절감을 강화한다. 열린 결말은 그 결말의 해답을 영화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들의 현실 삶 속에서 구하기를 의도한다.

노출 부족과 노출 과다로 자연 조명의 광원이 드러난 평면적 화면, 대화 장면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편집 패턴을 배제하는 카메라 움직임, 등장인물과의 심리적 동화를 차단하는 화면내의 인물 배치, 의도적으로 분절된 음악의 사용은 관객들이 영화와의 거리두기를 통하여 이성적으로 영화를 바라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브르 사 비>는 고다르 감독의 혁신적이고 정치적인 영화 형식의 특성을 예견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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