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세필드(Sheffield)지역의 한 대학이 내년부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Sony PlayStation)게임 전공 석사과정을 개설한다.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좀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하라고 정부 교육당국이 재촉하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현상중의 일부다.

올해 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전인문교육의 가치가 의심스럽다는 식으로 발언했다가 호된 비난을 받았던 교육부 장관 클라크(Charles Clarke)는 또다시 지난 달 공개강연에서 ‘대학에서 중세역사를 가르치는 과정을 장식물 정도로 유지하거나 말거나간에 정부가 그런 교육에 재정지원하는 일은 낭비다’, ‘경제를 살리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는 생각않고, 아직도 대학을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공동체라고 여기는 중세식 사고에 빠져있는 대학에 왜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발언했다고 전해지는 바람에 역사학 교수들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직 장관들 중에 법학 다음으로 역사학 전공자가 많다거나, 블레어 수상의 대학생아들도 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다는 등등의 흥미거리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인문학을 부정하려든다는 식으로 사태가 커져가자 클라크 장관은 보도내용을 부인하고 나섰다. 중세 운운의 표현은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뒤따르지 못하고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를 못하는 공허한 교육을 지칭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명하면서, 시대에 뒤쳐진 대학사회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늘리라 요구할 수 없으며, 사회적인 유용성이 명백한 학문분야에 주로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재차 밝혔다.  

사실 그의 발언내용은 새로운 것이 없다. 1980년대 이후 줄곧 교육장관들은 단지 교육을 위한 교육은 중세 특권층의 낡은 유산이라 비난해 왔다. 심지어 현 고등교육청 장관은 학생들에게 노동시장에서 기업이 원하는 기능을 훈련시켜 주지 못하는 대학교육과정들을 일러 미키마우스(Mickey Mouse-유치하고 무익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 학위라 비난한 바 있다. 비판자들은 지난 이십년간 영국정부 고등교육정책이 일관되게 대학을 고용시장을 위한 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정치인들과 교육관료들은 대학과 대학교원들로 하여금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맡도록 줄곧 요구해왔으며, 대학재정지원을 미끼로 구체적인 교육과목구성와 평가방법에까지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로써 하나의 학과가 계속 재정뒷받침을 받으며 존속할 수 있을지는 ‘경쟁력’과 ‘기능’에  달리게 되었고, 학과마다 취업에 유리한 실용적 기능을 습득시켜준다는 목표를 내세워야 했다. 그 결과 대학이란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해 훈련받는 곳이라는 도구주의적 정서가 대학가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정서가 어찌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중세역사학 교수들이 교육장관의 발언에 맞서 역사학교육을 옹호하겠다며 발표한 반박성명의 논거마저도 역사학과졸업생들이 ‘대단히 취업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고고한 상아탑의 전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교육만을 위한 교육을 하는 대학이란 중세에도 존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지식산업과 인적자원이라는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된 시장의 공세 앞에 현대의 대학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이른바 교육소비자 위주의 맞춤형 기능교육을 공급해야 시장의 ‘코드’에 맞는 대학 행세를 할 수 있겠고, 대학의 위상이 낱낱이 점수화되고 서열 매겨지는 마당에 계량화, 상업화 가능한 지식을 추구하고 취업에 쓸모 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영국 대학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가 대학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라는 사실마저 실종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자율적인 진리추구라는 대학 고유의 정체성을 무시하고서는, 아무리 막대한 국고를 쏟아부으며 창조적인 연구업적을 내고 세계적인 교육환경을 만들라 닥달해봐야 헛된 일이라는 걸 역사로부터 배워 알기 때문이다.

정작 계몽시대 이전의 중세 대학행정가들은 ‘순수한’ 진리추구에 매우 적대적이었고 학자들의 교육과 연구에 온갖 간섭을 일삼았다. 교육당국이 역사를 거꾸로 돌려 중세시대로 되돌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임무인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이 사실은 얼마나 위험스럽게 보이겠나 말이다.

김한균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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