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밤, 거리의 벽에 기댄 채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빨간 불꽃 속으로 난로가 나타난다. 소녀는 얼어붙은 귓불과 손, 발을 녹인다. 두 번째 성냥을 긋는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나온다. 또 성냥을 긋자 하늘 위 할머니가 소녀를 맞이한다. 소녀는  행복을 느낀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소녀는 미소를 띠며 죽어있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어린 시절 읽고 잊고 있던 이 동화가 요즘 가끔 떠오릅니다.  주변에 참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이들을 은유하는 것 같습니다. 몇몇 학생은 현실을 엄혹하게 받아들입니다. ‘공정 사회’라는 정치적 구호가 풍미하지만 과연 세상이 공정한지, 열심히 노력만 하면 나의 생계와 나의 꿈이 보장되는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 나라의 어떤 지도자가 이야기했던 ‘담대한 희망’과 같은 것을 지금의 우리 학생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대신문 창간 64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탐사기획보도’ 강의를 맡으면서 어느덧 이 유서 깊은 신문의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학교 앞 ‘맛집’이 줄고 학생의 연애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기사는 읽어 내려가기 편하게 말랑말랑하고 공감이 갑니다. 고대정신과 대학교육을 진단하는 기획물은 시의적절하고 진지합니다.

다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이 완벽한 신문에 지극히 개인적으로 한 가지를 더 많이 다뤄달라고 희망합니다. 이것은 ‘관점’입니다. 나의 절박한 삶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혹은 인류의 담론이기도 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신문이 ‘이거다’라고 규정해주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사실의 홍수’ 시대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이 갈구하는 것은 ‘관점’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사실 중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조망해야 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이자 해답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는 없습니다. 고대신문의 지면이 현실을 번민하며 살아가는 독자에게 ‘현자(賢者)의 지혜’를 속삭여주었으면 합니다.

허만섭 시사월간지 ‘신동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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