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정현정 전문기자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울고 웃던 날이 있었다. 기억은 전동차와 함께 시시때때로 덜컹거린다. 이런 작은 동요마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모두 삶을 지겨워했을 것이다. 앞으로 지하철은 어느 시점에서멈출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오늘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새로운 곳에 집을 마련했고, 오늘이 바로 하숙집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저녁 여섯 시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저녁밥을 먹었다. 예사로웠던 날이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특별해졌다. 그녀에게 하숙집은 대학을 다니는 사 년여 동안 매우 정든 곳이다. 그렇다고 떠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집의 신분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성능이 좋은 텔레비전은 많은 하숙생의 광장 격이었던 거실을 군림했다. 아줌마는 텔레비전 때문에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떠한 충고도 하면 안 될 것처럼 선량해보였다. 때마침 저녁 뉴스가 나왔다. 그 뉴스는 그녀가 식사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또 그녀가 그곳에서의 생활을 떠올릴 때 하나의 배경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오늘은 그 이상이었다.

뉴스에서는 국내 최초로 시도한 ‘발파해체 수직 점진붕괴기법’으로 한 아파트를 폭파시켰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건물을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영점 오초 간격을 두고 차례로 무너지게 하는 기술이었다. 아파트는 육초 만에 깨끗이 무너졌다고 했다. 잿빛 연기를 뿜으며 우렁찬 소음과 함께 아파트는 고꾸라졌다. 그녀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쳤다.

하숙집 아줌마는 건물에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건물도 아닌, 그 안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 그녀의 모든 추억이 공중으로 분해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하숙집 문으로 들어온 바람은 그녀의 텅 빈 마음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그녀가 이십 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무너졌다. 그녀는 아파트가 발버둥치는 것 같았기에 태연할 수 없었다. 급류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구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부모와 같았다. 물속으로 들어가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가.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그녀는 문득 경태가 보고 싶었다. 여행 중인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경태와 그녀는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다. 그녀는 경태에게 늘 동네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사를 계획해본 일이 없다.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생활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부모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곱절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지금도 괜찮아’라는 식의 태도가 ‘어떻게든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라는 걸 선량한 부모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부모와 다르게 그녀는 기존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식이란 흔히 부모가 걸어온 길을 거스르고 싶어하지 않던가. 그녀는 단지 그러한 수많은 자식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동네가 사라지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못해 다른 곳으로라도 떠날 줄 알았다.

 

▲ 일러스트 | 정현정 전문기자
경태는 그녀와 달리 동네를 애장품 다루듯 아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군데에 애정을 쏟는데, 그는 그것을 ‘장소화’라고 명명했다. 경태는 처음으로 자기가 장소화한 곳이 이 동네이므로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 것과 같을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소에서 추억을 만들고, 그 장소들이 모이면 자기는 풍족해질 거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경태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실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 큼지막한 안경 속으로 어떤 생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인가. 그녀는 장소가 저축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늘 의아했다.

 

그들이 살았던 동네는 ‘율도’였다. 경태는 장난스럽게 ‘율도국’이라 불렀고 그녀는 그 말이 싫었다. 그녀에게 홍길동이 세운 비밀의 왕국 같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녀가 율도국의 주민이었다. 동네 이름은, 후진 피아노 학원 이름이 모차르트나 베토벤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은 효과만 주었다.

율도는 밤톨만한 지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큰 규모로 염전 사업이 진행되었으나 지금은 바다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땀이 증발되어 주민의 얼굴로 짠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그 마을에서 조용히 자랐다. 묵묵히 시간을 보냈지만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리라 수백 번, 수천 번 되뇌며 돌파구가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항상 잠들었다.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나고, 그녀의 아버지는 어떤 회사를 다니고 그녀의 어머니는 어떤 일을 했지만 그저 연장을 두드리거나 길쌈을 하였던 것으로 치자. 자정이 가까워오면 늑대처럼 생긴 개가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순찰했다. 폐가 지붕에는 무성하게 풀이 자라고 산비탈에는 작은 빌라들이 버섯처럼 증식했다. 그녀는 주변에서 독이라도 내뿜을까 앞만 보고 걸었다.

그녀는 율도에 대해 좋은 기억도 가지고 있다. 율도를 회상할 수 있는 이유도 그곳에서의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노을빛이었다. 율도는 원래 인천의 작은 섬이다. 수많은 인부들이 화란인처럼 흙을 계속 쌓다가 결국은 율도가 육지에 기생하게 만들어 주었다. 해는 언제 떴는지도 모른 채 저녁이 되면 서서히 저물어 서해바다 지평선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빛은 작은 동네를 감싸 안아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짧은 순간이 매일 연출되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감히 ‘시간이 멈췄다’는 표현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 때만 되면 동네는 유난히 조용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간을 만끽했다. 그녀는 부모님도 이 순간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집만 이런 순간을 느낄 거라 착각할 만큼 순진했다. 동네 사람이 진정 몰랐겠는가. 모두들 갯벌에 발이 서서히 침잠하듯, 노을이 자기를 계속 붙잡을 거라 여겼고 그로인해 기꺼이 시간을 소비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지속적인 안녕보다 강렬한 추억을 더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들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저마다 자기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경태에게 그 일에 대해 딱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히죽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그 시간을 장소화한거로군.”

다시 한 번 경태의 안경 너머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그러나 노을빛은 그녀가 율도를 떠나려 하는 마음을 붙잡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네는 황폐해졌다. 그녀가 살던 아파트는 산비탈 빌라들의 호위를 받으며 꿋꿋이 서 있었다. 강인하다기보다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파트는 질척하게 주어진 운을 다하려 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창피했을 뿐이다.

그러던 아파트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도 없게 무너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파트와 동네 전체는 서서히 변했다. 단지 그 소멸이 지금에서야 공식화되었던 것이다. 주변에 새로운 아파트가 세워질 때부터,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뜻밖의 사고로 죽었을 때부터 동네는 차츰 없어졌다.

율도 옆에는 ‘청라도’라는 섬이 있었다. 그 섬도 율도처럼 처음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다. 그녀는 청라도가 자기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그 구역의 가장 끝이라고 여겼다. 작은 분교에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이 다니고, 열 가구도 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산다고 익히 들었던가. 인근 주민들도 그 존재를 알 수도, 혹은 모를 수도 있었던 섬은 어느새 육지가 되어 율도보다 앞서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끝은 진정 끝이 아니었다.

청라도에 아파트가 줄줄이 지어졌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하숙집에 있을 때는 이미 예전의 청라도가 없어진 후였다. 뉴스에서는 조만간 그곳에 지하철이 완공된다고 했고, 신도시라는 명패를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저녁마다 밥을 먹으며 뉴스에서 나오는 청라도가 진정 자기가 아는 그곳이 맞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선량한 아줌마가 저런 땅이나 사야했다고 말할 때마다 장소로서의 신분 상승과 뜻하지 않게 졸부가 된 땅의 모습을 한참동안 생각했다. 청라도는 그녀가 아는 동네이고 놀다가 잠시 가본 적이 있었다. 초라한 가옥만 있을 뿐 어떤 상업의 흔적은 보이지 않던 태초의 땅이라는 걸 그녀는 원주민의 특권답게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서울로 오기 전, 그녀는 청라도에 세워지는 도미노 같은 고층 빌딩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집에서 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건물들이 해를 가렸다. 건물 뒤에 후광만이 아련하게 보였다. 그녀는 수도 없이 그 도미노의 패를 치고 싶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그녀는 하숙집 침대에서 손깍지베개를 베고 자기가 떠나온 율도를 생각했다. 왜 율도가 아니라 청라도일까. 격동적인 역사 속에서 실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몇 안 되듯, 지금 주민들은 어느 시대의 한 우민답게 율도에서 조용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저 노을을 구경할 수 있는 순간을 빼앗긴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율도를 떠나고 싶었던 그녀는 경태와 운 좋게 서울에 있는 학교에 합격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경태는 집을 따로 처분하지 않고 부모님이 남긴 유산과 보험금으로 학교 근처에 방을 얻었다. 경태는 지금까지 살던 집을 처분하기에 너무 아깝다고 했다. 살아있을 때의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있는 집을 차마 팔아버릴 수 없다는 거였다. 율도의 집을 놔둔 채 경태는 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아버지가 평소보다 수천 대의 냉장고를 조립하고 어머니가 평소보다 수만 벌의 옷을 만들어야 벌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율도를 떠났다.

그녀는 처음 입학할 때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루하루가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지만 뭐부터 해야 할 지 속수무책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은 경태뿐이었다. 매우 친했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만난 경태보다 새로운 친구를 더 사귀고 싶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말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그 버릇은 율도를 떠나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그녀를 잘 알던 사람들은 그녀가 변하거나 자신감이 충만해진 걸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진보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사람이 바로 경태다. 그녀가 천천히 말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답답해했지만 경태는 그녀의 말에 더 집중했다. 경태는 그녀가 말할 때마다 어떤 시점에서 경쾌한 반전이라도 있을 것처럼 기대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고 경태는 그녀와 대화할 때 자주 딴 생각이 들었다. 둘은 점점 서먹해졌다.

그녀는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만났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지만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일종의 운명을 감지해서였는지 그들은 깊은 유대감으로 뭉쳤다. 그녀는 율도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와 이웃을 닮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걸까. 그것도 그간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비슷한 형상을 한 채로. 서울에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세상에 서로 닮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함께 추억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 알았던 사람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녀 앞에 누가 남았는지가 중요해졌다. 저 사람이 원래 누구를 닮았고, 그 익숙함 때문에 친해지기 쉬웠다는 사실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무뎌졌다. 그녀는 분명한 인과가 존재하는 현상을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치부했다. 그 뻔뻔하면서 나태한 태도는 아마 부모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친구들과 시간 가는지 모르게 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마치 자유를 아는 것처럼,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녔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대학생이라는 자격,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그녀를 더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도 일상과 다를 바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해가 저물 때 느꼈던 ‘시간이 멈춘’ 기분을 느꼈다. 길을 걷다가도 시간은 정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기분이 대학 입학 후 처음이었다. 의기양양했던 그녀가, 이제는 귀와 손에 닿았던 휴대폰의 딱딱한 촉감이 자기를 나무라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소침해졌다. 부모의 죽음을 전달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휴대폰 자체인 것처럼 휴대폰이 갑자기 낯설고 무서웠다. 전화는 편리한 물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전달할 때는 잔인한 물건이었다. 우리는 온순해 보이는 물건이 갑자기 잔인하게 돌변하는 순간을 감내해야 한다. 지인의 임종을 지키고 앉아있지 않는 한 모든 죽음은 전화로밖에 전해들을 수가 없다. 소중한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을 때, 그 죽음이 뜻밖의 사고일 때 낯선 사람의 목소리로 싸늘한 죽음을 맞닥뜨려야 한다. 그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인천의 한 병원으로 갔다. 그제야 그 도시를 일 년 만에 찾았다는 걸 깨달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곳을 그녀는 일 년 동안 계속 유보해두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처럼 어떤 식으로든 찾게 된다. 경찰은 그녀에게 전했다. 부모님이 해질녘 갯벌에서,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잊어버린 채 머물다가 죽었다고.

장례식이 끝난 후 율도의 집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 그녀는 다시 하숙집으로 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밖을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이따금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소리도 들렸지만 어떤 것도 그녀를 일으키거나 눈물 흘리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섬처럼 혼자 남겨졌다. 맞닥뜨리기를 유보해둔 사람들이 이미 공중으로 흩어져 그녀에게 아무런 의무와 책임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일 년 동안 살았던 서울이 갑자기 낯설었다. 서울에서 의지할 곳 없이 기생한 채 하루하루를 버틴 느낌이었다. 그녀는 여태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겨두고 율도를 떠난 것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앞으로 그게 아니었다는 말로 지나간 시간을 변명할 일이 많아졌다.

그 뒤로 그녀는 병적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모든 생활이 잠자는 일로만 구성되지 않았겠지만 본인에게는 꼭 그렇게 느껴졌다. 배고프면 일어나서 밥 먹었다가 다시 자고, 수업시간이 되면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다시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경태는 여행을 떠난다는 말만 남기고 없어졌다. 이번에는 남아메리카를 횡단하는 건지, 어느 몽골 사막을 배회할 건지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본인이 갈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그저 어느 책에서나 나올 법한 공간을 경태가 장소화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경태는 그녀에게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자고 꿈꾸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태는 자기가 앉은 의자를 그녀 쪽으로 앞당기며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방금 전 하숙집에서 식은 땀 흘리며 꾸었던, 생각이 날듯 하지만 결국 아무런 형상도 남지 않은 꿈을 들려주었다. 경태는 질문도 하면서 꿈의 흔적을 따라다녔다. 말을 더듬지 않는 그녀에게 경태는 다시 집중했다. 친구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그녀는 지금 한 얘기가 다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경태는 여행 후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고 말했다. 추억이 깃든 장소는 늘었지만 그만큼 기존의 장소들은 사라졌다. 그는 의도적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아끼는 장소들이 점점 사라지는데 그로인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시간을 묻어둬야 했다. 경태는 그녀가 잠자고 꿈꾸는 시간도 일종의 장소화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믿었다. 잠자고 꿈만 꾸는데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변한다. 시간의 흐름은 굉장히 위대한 것이라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 짓도 안 해도 변화는 생긴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든가, 이렇게 살아보니 어떤 심경의 변화와 주위의 반응이 있었다든가. 그래서 본인이 늘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비관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속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잘 자라고 있다.

아끼던 장소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가슴 졸이는 사람이 있다. 경태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녀도 그와 비슷했지만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가 경태를 멀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이 지났을 때, 주변의 장소들은 경태의 우려에 맞게 점점 없어지고 다른 것들로 대체되었다. 자주 가던 식당과 서점, 학교 뒤뜰의 정원까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가게들은 그저 기존과 뭔가 다르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거라고 믿기로 하자. 이후에 경태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술집이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그녀는 더 이상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 일러스트 | 정현정 전문기자
어느 날,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를 차릴 줄 몰라 어영부영하다가 유일한 혈족인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외할아버지는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 도착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인기척은 있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고흐처럼 한 쪽 귀에 붕대를 감고 쇠약한 모습의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반가웠다기보다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 비로소 어머니가 ‘아버지’라는 발음을 매우 정성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 글자를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은 그녀가 예전에 수차례 방문했을 때보다 더 어수선했다. 할아버지는 굳이 집안을 깨끗이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해오던 농사를 짓기 위해 낮에는 밭에 나가고 밤에는 밭에 나가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할아버지의 나머지 한 쪽 귀도 들리지 않는다. 수십 년 전, 그녀의 어머니에게 여동생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고 할아버지는 딸의 안부만 가끔씩 전해 듣다가 어느 날 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동안 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화가 할아버지를 귀먹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시골이 낯설었다. 어릴 때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시골은 가는 도중에 들르는 곳일 뿐 그녀에게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있기가 어색해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막걸리 병이 볼링공이라고 기다리는 듯 처연하게 놓여 있었다.

그녀는 술상을 차려 사랑방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두서없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으나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로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거나 어제 같이 얘기했던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히 죽기도 했다는 얘기 같았다. 그녀는 전쟁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고난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계속 말했다. 심각한 현실 속에서 우민답게, 할아버지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만큼은 철두철미했다. 그녀는 불현듯 할아버지가 그런 고난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억양 속에 자식들이 본인보다 먼저 죽은 사실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약간은 부정확하지만 진실이 더 많을 거라 믿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그 시간 속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눈썹은 작은 둥지를 구렁이가 들쑤신 것처럼 엉망이었다. 저마다 다른 길이의 눈썹을 한참 보다가 그녀는 책상을 뒤져 가위를 꺼냈다. 무례하리만치 갑작스럽게 할아버지 눈썹에다 가위를 댔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끔 시골에 올 때마다 했던 행동이기에 따라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술 냄새를 풍기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그녀의 가위질과 함께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수많은 주름 속에 박히거나 눈 밑으로 떨어졌다. 검은색 혹은 하얀색 눈썹이 가위질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녀가 가위질하는 틈에 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가윗날이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그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언젠가 종종 아버지의 눈썹을 다듬었던 일을 생각하는가. 그들은 서로 잃어버린 것을 떠올렸고 눈썹 손질만큼의 작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시로 할아버지의 눈썹을 다정하게 다듬어주면서도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을 테고, 뜻에 따라 서울로 갔지만 여동생의 죽음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갑작스런 불행을 이겨내기에 벅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간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괜히 여동생의 죽음은 자신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기에 생긴 사고였음을 평생 착각했을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음에도 그게 다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도, 귀향하는 것도 견디지 못해 서울 언저리를 맴돌다가 특정한 곳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더러는 웃고, 또 더러는 울었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깨끗이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지만 결국 자식에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자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에 전화기에 뺨이라도 맞은 듯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채 그저 잠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후에 다시 율도로 돌아왔다. 경태와 그녀는 휴학을 하고 여태까지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더하여 살고 있었다. 다시 집 주위를 돌아다닐 때, 그녀는 버스와 지하철, 심지어 집 근처 시장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마주쳤다. 그 때마다 그녀는 그들을 피해 다녔다. 왜 그랬는지 그녀도 자기 마음을 몰랐다.

더러는 예전 그대로였고 또 더러는 변했다. 다들 고민이 있는 표정이었고 혹은 결혼이라도 했는지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피했지만 그들을 볼 때면 ‘너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 중 한 명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과 그녀는 율도를 떠나지 못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일부러 자리를 피함으로써 불현듯 느껴지는 위기감 때문에 다시 그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제 그들로 인해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속에서 자기가 일부러 모른 척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죄책감과 함께 떠올릴 것이다. 머리를 넘기는 모습, 입술을 오므리는 모습, 걸음걸이가 독특한 모습마저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있다면 얼마나 신기할 것인가. 그때마다 얼마나 자주 그녀의 시간은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가.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온 것인지, 혹시나 자기처럼 외면하고픈 장소에서 도망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할 것이다. 사는 곳을 슬쩍 물어보면서 어떤 동네의 주민일 뿐인 상대방에게 그 동네를 완벽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능력까지 기대할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경태와 그녀는 아파트가 재개발되어 무너져야 한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어김없이 나가야했다. 율도가 통째로 변한다는 말이 돌았다. 그녀는 율도가 재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재개발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경태와 그녀는 떠날 준비를 천천히 하다가 결국 마지막 주민이 되었다. 택배를 보관하고 있다가 건네주는 상냥한 경비아저씨, 길가의 늑대처럼 생긴 개들을 쫓으며 그녀에게 길을 터주던 가게아저씨도 모두 어딘가로 떠났다. 경태와 그녀는 붉게 엑스자로 표시된 집들이 늘어날수록 무서웠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예감 때문이 아니라 이제 버려야할 것은 버려야 하는 타이밍 때문이었다.

율도에서의 마지막 날, 경태는 그녀에 비해 다소 담담해보였다. 그녀는 그 담담함이 많은 곳에다 시간을 저장해둔 여유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경력과 친구도 그 경험을 했었다는 모종의 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다. 그녀는 말 더듬는 자기 옆에 항상 좋은 친구가 되어준 경태의 소중함을 몰랐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생각보다 경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걸 보고 ‘얘는 내 친구야’라는 자신감과 ‘내 친구였는데’라는 질투심도 동시에 느꼈던 때가 있었다. 새로운 생활을 위해 경태에게 소홀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음을 이제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녀는 몸소 느낀다. 경태가 그녀 말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 의자를 그녀 쪽으로 끌어당길 때 그녀의 시간은 때때로 멈추었다는 사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사실도 이제는 안다. 휴대폰을 버렸지만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때 구겨진 종이를 펴듯 꾸물거리는 소리 때문에 어떤 소식을 듣게 될 지 늘 기대하곤 했다. 더군다나 휴대폰이 있어야 멀리서 여행 중인 경태에게 전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다시 휴대폰을 신청해서 전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을 지하철에서 생각한다. 없어진 동네처럼 그녀의 대학생활도 곧 끝이 난다. 정든 하숙집을 떠나면서 그녀의 마음은 이미 공허해졌다. 그녀는 학교를 당장 떠났을 때의 먹먹함 때문에 졸업 전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 이제 그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침과 낮, 그리고 쓸쓸한 밤을 보낼 것이다. 그 시간은 새로운 곳에서 아무런 추억이 없다는 이유로 무의미해 보이겠지만 다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그녀만의 장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은 천천히 가다가 옆에서 같이 달리는 또 다른 지하철과 서서히 만난다. 도저히 만나질 것 같지 않았던 전동차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 안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상대적으로 멈춘 이 순간을 그녀는 기록해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졸업할 때가 다 되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국 생각나는 것은 시간이 멈춰져버린 것 같았던 짧은 순간들의 모음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대로 낙하하고 몇 가지 순간은 그녀의 머릿속에 콕콕 박힌다. 사건의 종류와 상관없이 꼼꼼하게 새겨져버린다. 황홀한 기억도, 애달픈 사건도 있었다. 하나하나 쌓아둔 시간 덕분에 그녀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며 혹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진(문과대 한문07)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