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진을 찍을까?”란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물음을 화두로 건네 봅니다. 카메라가 있으니 사진을 찍는다는 대답은 “거기 산이 있기 때문에 간다”란 답변만큼 모호합니다. 동문서답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왜 글을 씁니까? 어떤 목적을 둔 글이 있습니다. 칼럼, 기사, 대자보, 반성문 같은 것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반면에 일기는 사적인 성찰의 글입니다. 연애편지는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역시 자신을 돌보는 글일 수 있습니다. 시나 소설을 습작해보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와 다릅니다. 예술적인 세계로 진입하는 글쓰기가 됩니다.

이제 “왜 사진을 찍을까?”란 물음에 대해 어느 정도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우수상으로 성현준의 작품을 골랐습니다. 찍은 사람의 마음이 사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입니다.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조각상이 주인공이지만 옆에 사람도 한 명 있습니다. 쓸쓸함이 배어나지만 차분합니다. 사진이란 것은 참묘한 매체라서 사진의 내용을 보면 찍은 이의 정서, 심리적 변화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우수상으로 이영렬, 신광균, 이석현을 뽑습니다. 이영렬의 사진은 힘이 넘칩니다. 전적으로 모델의 덕분입니다만 어쨌든 이런 장면을 카메라를 통해 사진으로 옮긴 것은 사진가의 공입니다. 망원렌즈로 찍다보니 심도가 얕아서 뒤의 관중이 모두 흐리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초점을 살릴 수 있어도 좋았습니다. 무조건 쨍하게 찍는 것은 능사가 아닙니다. 배경에 등장한 관중들의 초점이 살아있으면 피사체를 읽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신광균은 사진의 기본기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색도 볼 줄 알고 대비가 뭔지도 알며 앵글이란 것도 압니다. 이런 사진은 좀 크게 프린트해서 보면 더 좋아진답니다. 렌즈가 찍은 사진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만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야구장과 관중들이 아기자기합니다. 이석현은 이영렬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사람을 크게 찍었으므로 우수상 자격이 있습니다. 사진은 사람이 발명했고 처음부터 가장 많이 등장한 대상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가운데 두는 구도도 충분히 기능합니다. 그런데 좌우의 공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는 차라리 어느 한쪽을 더 많이 열어두는 게 좋습니다. 지금 같으면 좌우에 아무 보조요소가 없습니다. 그나마 비스듬한 곳에 걸터앉았으니 지루함을 면했습니다. 가작 7편중에선 권오석과 김욱의 작품이 제일 눈에 들어왔습니다. 낙엽을 하나 들고 찍는 것은 유치해보일 수 있습니다만 작가의 의도를 강력히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이왕 들고 찍는 거니 더 재미있게 했다면 최우수상으로 뽑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욱은 안정된 프레임 구성을 선보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과연 사진을 왜 찍는 것일까요?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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