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박물관 회화실 안쪽에는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라는 작은 크기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위쪽에 참새 한 쌍이 매화나무가지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아래쪽에 시와 함께 이 그림을 그린 사연을 적어 놓았다.

전시된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기가 작고 화려하지 않아 이내 실망할지도 모르는 이 그림은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의 작품이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이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열쇠가 이 그림 안에 담겨 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지 13년 째 되던 해에 큰 딸의 혼인을 맞아 아내 홍씨가 오래되어 색이 바랜 치마 6폭을 보내왔다. 그것은 그녀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것으로, 딸아이의 혼례를 앞둔 상황에서 치마를 통해 자신의 신혼시절을 떠올림과 동시에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냈고 앞으로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남편에게 부부의 정을 잊지 말아 달라는 심경으로 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유배생활로 인해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딸아이의 혼례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다산은 그 치마를 잘라서 <하피첩(霞帔帖, 다산의 부인이 시집 올 때 입고 온 붉은색 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교훈의 글을 써주고 또 그 나머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축원하는 ‘매조도’와 함께 다음과 같은 시와 이를 만든 사연을 적어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매화병제도>이다.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 가지에 앉네    翩翩飛鳥 息我庭梅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왔으리라       有列其芳 惠然其來
여기에 둥지 틀어 즐거운 가정 꾸려다오      亥止亥樓 樂爾家室
이미 꽃이 만발하여 열매도 넉넉하다         華之旣榮 有賁其實

이러한 사유를 알고 나서 그림을 다시 보니 아까와는 달리 보인다. 매화가지가 가로로 뻗어 있는데, 그 끝은 초록색을 띠고 있고 활짝 핀 꽃과 꽃망울을 아직 터트리지 못한 꽃봉오리가 가지마다 달려 있다. 그 가지 위에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이 꼭 붙어 있는 참새 한 쌍이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부디 앞으로 혼례를 올리게 될 딸아이의 행복을 염원하는 그의 애틋한 마음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떨어져 산지 10여 년, 지금은 혼자 떨어져 살고 있지만 이후 가족과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예부 연구원 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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