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1920년대의 미국은 갱스터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은 1920년에 금주법(禁酒法)을 시행하였고, 이 법은 시골 지역의 주류 밀조업자와 대도시의 불법 주류 배급을 장악한, 도시의 갱스터를 등장시킴과 동시에 급성장하게 하였다. 갱스터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게 된 사회 분위기와 갱스터에 대한 대중의 복합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할리우드는 1920년대부터 갱스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930년대는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필름 느와르 영화는 어둠의 세계와 교활한 도시의 범죄와 도덕적 타락을 그린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저예산으로 제작된 할리우드의 B급 영화로 정의해 볼 수 있다. 필름 느와르는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의 등장인물을 통해 선과 악이 뒤섞인 인간의 탐욕스러운 이중 심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필름 느와르 또한 플래쉬백(flashback)을 사용하여 역전된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구조화하고, 거듭되는 반전과 복선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들어 가는 사건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필름 느와르는 액션보다도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음험한 분위기 속으로 관객들의 심리를 끌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갱스터 장르와는 구별된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 1992년>은 6인조 갱들이 보석 상점을 털기 전(前)과 후(後)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강도 행위 자체를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타란티노 감독은 범죄보다도 범죄자들과 그들 서로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죄를 위해 조직된 갱단인 극중 캐릭터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로의 본명을 감추고, 단지 White, Blonde, Orange, Blue, Brown, Red와 같은 색깔로 이름을 붙여 호명한다. 캐릭터들을 색깔로 이름 붙인 몇 개의 독립된 단락들을 플래쉬백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구성을 통해, 영화는 각각의 캐릭터들을 설명하며 실패한 범죄의 원인을 찾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저수지의 개들>은 고전적 할리우드 갱스터, 필름 느와르, 홍콩 액션 영화들로부터 많은 영화적 요소들을 빌려왔다. 이러한 점은 타란티노 감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징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임영동 감독의 홍콩 액션 영화 <미스터 갱, 龍虎風雲,1987년>은 타란티노 감독이 모방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들을 만큼 <저수지의 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저수지의 개들>의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등의 복장을 입은 캐릭터들은 1950년대 필름 느와르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오우삼 감독의 홍콩 액션 영화들의 갱스터들이 입는 복장이기도하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갱스터들의 파멸은 단정했던 넥타이가 헝클어지고, 색안경을 잃어버리고, 셔츠가 피에 젖는 모습들을 통해 상징화된다.

캐릭터들의 이름을 색깔로 부르고,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 이야기 구조, 갱인 Blonde가 잡아 온 경찰을 고문하는 장면 등은 기존의 다른 할리우드 갱스터와 필름 느와르 영화들에 기원을 둔 것들이다. 그럼에도 다른 영화들에서 사용된 영화적 장치를 차용하여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 고유의 영화적 구조와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다. Blonde가 경찰을 고문 할 때 듣는 음악은 K-Billy의 1970년대 히트곡이라는 프로그램의 1970년대 팝 음악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1970년대의 음악, TV, 영화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영화 속에 반영한다. 이처럼 1970년대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저수지의 개들>에 주입한 것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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