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의 전적은 13전 전패. 1승을 목표로 외치던 한국 여자 럭비 대표팀은 지난 달 2일 아시아 여자 7인제 선수권대회에서 라오스를 상대로 17-12로 승리하며 마침내 그 꿈을 이뤄냈다. 이들의 1승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마도, 이전에 럭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이 모여 일궈낸 승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 2의 우생순'이라 불리는 이들의 승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여자 럭비 대표팀은 현직 기자, 임용고시 준비생, 대학원생 등 이전에 럭비를 접해 본 적인 없는 이들로 꾸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왜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럭비를 접한 다수의 선수들이 대표팀에는 없었던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럭비가 비인기종목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우리나라에 럭비가 뿌리 내린지는 80년이 넘었다. 남자 럭비가 이 기간 동안 성장해나간 것과 달리 여자들에게 있어 럭비는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 불모지이다. 이는 비단 럭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다움을 추구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여자는 공공연하게 이방인이었고 소외되어 왔다. 당장 우리 주변의 녹지운동장이나 농구장을 채우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이 그러하다.

이는 한 그라운드에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야구, 럭비 등을 즐기는 미국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 미국에서 여학생들이 지금처럼 스포츠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은 스포츠를 비롯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차별적 혹은 불평등한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타이틀 나인(Title IX)’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영향으로, 남성 중심의 체육 교과가 여학생들에게도 개방이 되었다. 당시 미국 여학생들은 주로 미식축구나 야구 등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규칙과, 공 하나만 있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스포츠에 대한 여학생들의 접근성 증대라는 작은 움직임은 훗날 미국을 여자 축구 강국으로 만드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바위에 난 조그마한 틈에 고인 물이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 커다란 바위도 쪼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학생들의 스포츠 접근 기회를 다양화하는 작은 노력이 출발점이 된다면 여학생들이 자연스레 팀 스포츠를 즐기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1905년 야구가 대한민국에 소개된 이래 오늘날 프로야구 6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100년이 넘는 야구의 역사에서 여자들의 이야기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으로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여자 야구 연맹에 등록된 전국의 여자 야구팀은 약 30개로 그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대회가 열리며, 주말마다 리그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 싹을 틔우는 것이 어렵지,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것은 순식간이다. 머지않아 여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녹지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드리블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

SPORTS KU 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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