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국회시정연설 이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국회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방문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결국 한미 FTA는 한동안 꺼진 촛불을 다시 지폈다. 눈에 보이는 촛불은 시청광장에서 여의도까지 번졌고 온·오프라인에서 FTA 반대의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7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부 앞은 FTA 비준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의 손에는 ‘99%를 짓밟는 한미 FTA 폐기하라’, ‘한미 FTA는 당신에게 기회가 아니라 재앙일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FTA 강행처리를 총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현재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재 성격의 서비스들이 한미 FTA 체결 후 제대로 제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의료 민영화, 청년 실업문제 등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농업 대책이 미비해 식량주권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주최로 열려 왔다. 3일에는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8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미 FTA 날치기 저지와 망국 협정 폐기를 위한 비상시국선언’을 했다. 9일부터는 여의도와 시청광장·청계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9일, 집회에 참여한 연사들은 무대에 올라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부터 부산과 인천에서 온 참여자, 의사, 연예인 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연사로 나섰다. 그 중 배우 맹봉학(남·49세) 씨는 “여기에 오신 많은 분들의 한미 FTA를 우려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연사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한 김수진(여·17세) 씨는 “상고에 다니는데 한미 FTA가 통과되면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직접 노래를 지어 부른 사람도 있었다.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가사의 ‘장난하나’를 작사, 작곡해 부른 김병수(남·45세) 씨는 “FTA가 야기할 피해는 지금까지 있었던 정치권 공방의 피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나라의 주권이 달린 문제라고 판단해 이를 노래로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문화예술로 알리는 시민의 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우섭(남·35세) 씨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FTA에 반대한다”며 ‘우리반 반장 이명박’이라는 노래를 작곡해 불렀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연사의 이야기를 듣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집회를 이어갔다.

시위 현장은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연사는 경찰을 “처음 집회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참여한 사람들”이라며 “촛불을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표현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 측은 집회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 한 시위대를 제재하지 않았고 시위대도 경찰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불평등한 FTA 체결 조건, 의료비 증가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다. 휠체어를 타고 집회에 참여한 장애인 오화석(남·48세) 씨는 “한미 FTA는 양국이 평등한 관계로 맺은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에 불합리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집회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노동자 연대 ‘다함께’에서 활동하는 김재원(남·27세) 씨는 “링거 한 대에 10만원 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며 “좋지 못한 노동환경에서 과로로 병을 얻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회가 누구를 위한 사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상은(여·17세) 씨는 “몸이 약하신 어머니가 아프셔도 비싼 의료비 때문에 손을 못 쓰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미 FTA가 가진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스스로 ‘촛불을 야근한다’고 표현했다. 저승사자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펼친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 ‘한미 FTA 통과시키려는 국회의원을 잡아먹는 저승사자’라며 SNS에 많이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집회가 끝날 무렵이 되자 사람들은 다음 날도 나와 촛불을 들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 집회는 2시간 반이 지난 오후 9시 35분 무렵 마무리됐다. 이후에도 또 다른 집회가 이어졌고 한나라당 당사로 거리행진을 하던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진압되는 등 시위가 격해지기 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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