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와 방송계에서는 ‘명품 조연’이라는 말이 있다. ‘명품 조연’이란 주연에 뒤지지 않는, 혹은 주연보다 더욱 빛나는 조연 배우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가 높이 평가 받으려면 주연들의 연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주연들만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주연들의 뒤에는 조연들이 알토란같은 연기로 작품의 소소한 재미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농구에는 ‘식스맨(Sixth man)’이라는 말이 있다. 주전들처럼 코트가 아닌 벤치에서 시작하지만 팀이 원할 때 출전해 자기 역할을 하는 선수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식스맨’이라는 표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미국프로농구(NBA)에서 1982-83 시즌부터 ‘올해의 식스맨 상(Sixth Man of the Year Award)’을 수여하기 시작했고, 농구는 5명이 주전으로 뛰는 운동이기 때문에 벤치에서 대기하는 나머지 선수들을 ‘식스맨’으로 표현할 뿐이다.

농구에서 ‘식스맨’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팀은 1950-60년대의 보스턴 셀틱스다. 당시 보스턴은 NBA를 집어삼킨 절대강자였다. 특히 레드 아워벡 감독이 부임한 이후 1956-57시즌부터 1965-66시즌까지 9시즌동안 7년 연속 우승을 포함 8회 우승을 차지했다. 보스턴이 이렇게 강했던 이유 중 하나는 주전 선수들도 강했지만 프랭크 램지, 존 하블리첵과 같은 ‘식스맨’들의 활용을 극대화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고려대 농구부가 강했던 비결도 주전 선수와 ‘식스맨’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김병철(체교92)-전희철(신방92)-양희승(체교93)-신기성(체교94)-현주엽(경영94), 이 5명의 팀원들이 강력했지만 고려대가 팀으로서도 강력했던 것은 이지승(법학91)-박규현(체교93)-박훈근(경제93) 등 주전에 버금가는 ‘식스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짧은 출전 시간동안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팀을 위해 헌신했고, 그들의 헌신은 팀의 전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또한 그들이 등장하면서 국내 농구에도 ‘식스맨’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조연보다 사람들 눈에 부각되는 주연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라는 배우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는 주연이고 누구는 조연이라는 식의 구분은 옳지 않다. 우리는 주연과 조연의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이 조화되어야만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드라마의 주연 배우는 자기 연기를 하지 못하면 시청자들의 엄정한 비판을 받는다. 반면 조연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면 주연 배우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세상이다. 주연과 조연 모두가 드라마에서 중요하듯, 모든 구성원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군가 하는 것이 남들의 눈에 띈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돋보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인생의 즐거움은 아닐까?

SPORTS KU 손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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