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겨울로 다가가는 계절이다. 이 시기에 추위의 극한인 남극탐험을 떠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인듀어런스호의 선장 어니스트 섀클턴이다. 100여년 전인 1914년 12월 5일 섀클턴은 남극대륙 횡단에 나서지만, 항해를 시작한 지 반년 만에 그의 배는 남극의 부빙에 갇히게 된다. 섀클턴을 포함한 선원들은 봄이 되어 얼음이 녹기까지 170일간을 남극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했고, 출항후 497일 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상륙했다. 비록 모험에는 실패했지만, 인간의지의 극한을 넘어서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끈 것은 섀클턴 선장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지난 한 달은 총학생회 선거가 화제였다. 졸지에 사진기자가 되어 모든 후보의 사진촬영을 했고 인터뷰에 참관하게 됐다. 선거 공약과 당선 이유도 직접 들었다. 사흘간의 투표는 끝나고 개표를 했다. 당락이 결정되고 낙선선본이 먼저 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건넸다. 한 낙선선본 후보는 밝은 표정으로 악의적 소문이 선거판에 점화될 것을 알았지만 출마했다고 이야기했다.

실패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한번 실패하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는 지레짐작에 ‘도전’이라는 말은 잔인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것 같은’ 것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성공을 포기하는 것이 실패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젊지만 무모하기가 참 쉽지 않다.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국영수 중심으로 열심히 했어요’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곤 했다.

어쩌면 우리는 실패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목표를 이루는 것은 성공이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꼭 실패는 아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풀이 죽어 실패를 굳이 각인할 필요도 없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실패했지만 성공했다. 그가 그토록 원한 것은 남극횡단이 아닌 전원이 생존하는 것이었다.

내가 본 그는 비록 낙선했지만 당당해 보였다. 아마도 그가 지나온 선거판은 섀클턴의 남극만큼 황량하고 차가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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