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식을 이틀 앞둔 8월 24일에 만난 김인환(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여러모로 이번 정년퇴임식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 달 전부터 어머니가 병원에 계셨는데 내일 퇴원하십니다. 병원에 계셨으면 정년퇴임식이 우울했을 텐데 다행이죠”
국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김인환 교수는 1979년 본교 교수로 부임해 올해로 만 32년을 강단을 지켰다. 교수시절 그는 유독 학생들과 싸우고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1992년 학생처장 시절에는 직접 대자보를 쓰기도 했다.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자 김 교수도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를 쓴 것이다
“서로 주장하고 싸우면서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죠. 대화 자체도 교육이니까요. 학생들하고 술도 많이 마셨고...(웃음)”
김인환 교수는 퇴임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조지훈 선생의 뒤를 이어 한국문화사를 완성하지 못한 걸 꼽았다. 김 교수는 홍일식 전 총장, 인권환 명예교수, 박노준 한양대 명예교수를 잇는 故 조지훈 교수의 2대제자다.

- 정년퇴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의무에서 해방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제 내가 쓰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만 읽을 수 있으니까. 제가 1965년에 입학했으니까 46년 만에 고려대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전부를 고려대에서 배웠는데 섭섭하기도 하고”

-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습니까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조지훈 선생님 강의를 들었을 때. 국문과에 들어가긴 했는데 문학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때마침 조지훈 선생님이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을 내셨는데 읽고 나서 한국문화사야말로 내가 한번 해볼 일이구나 싶었죠. 조지훈 선생님 만나고 시를 쓴 사람도 있는데 나는 문화사를 배웠고, 한문, 철학, 문학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 재직하는 동안 가르친 학생의 전환점이 된 적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하는 공부가 문학과 언어학을 결합시킨 일종의 융합인데, 한국에선 처음이었죠. 문학연구를 언어학적인 방법으로 하는 걸 말해요. 여기에 브레인 사이언스나 전자공학을 결합하면 최첨단 언어정보연구가 되는 거죠. 게임도 만들 수 있고, 하이퍼텍스트도 만들 수 있고. 근데 요즘 논문심사를 하면서 본 건데 본교 국문과 강헌국 교수나 원광대 문예창작과 정원경 교수 논문을 보면 내 방법을 사용했더군요. 내 연구방법을 젊은 학자들이 연구해서 나보다 더 멋있게 적용하고 해석했어요. 자주 연락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까 참 뿌듯하더군요”

- 국내 비평계의 거장이신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비평’이란 무엇입니까
“좋은 비평을 하려면 첫째로 작품을 잘 읽어야 하고, 둘째는 읽고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아무리 문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좋은 비평을 할 수 없어요. 한마디로 작품이 먼저 있고 비평은 뒤에 있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어떤 비평이든 무(無)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가 느낀 기쁨, 생각을 한 문장, 한 문장 새롭게 만들어 내는 거죠. 마치 불길에서 쇠를 녹여 두드리듯이 말입니다.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창작과 비평은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

- 그렇다면 ‘나쁜 비평’은
“작품을 읽을 줄 모르고 수사연습 하듯이 멋진 말들만 엮어서 쓰는 비평이 나쁜 비평입니다. 대표적으로 서양이론에서 시작하는 비평이 나쁜 비평이죠. 물론 서양이론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누가 무슨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한국 작품을 얘기하는 건 좋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어요. 외국이론에 근거해 비평을 하면 쉽습니다. 책만 좀 읽고 그 작품에 맞는 거 몇 개 뽑아서 얘기하면 되니까. 그래서 제대로 된 비평을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 비평을 시작할 때 작품선정 기준이 있습니까
“어떤 작품이든 단독으로 존재하는 작품은 없어요. 서로 한국문학사라는 맥락이 닿아 있는데 이 흐름을 일단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 나온 작품이 어떤 계보에 있는지 살펴보고 작품을 골라야 하니까. 그 다음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감수성’입니다. 술 감식하는 사람이 술을 조금 맛보고 양치질 하고 다음 걸 맛보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 사람의 혀라는 건 누가 어떻다고 말할 수 없거든요. 이론으로는 알 수 없는 거죠. 개념화할 수 없는 감수성과 직관, 즉 감식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감식안은 어떻게 기를 수 있죠
“작품을 읽을 때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이 음악은 ‘바하가 18세기 언제 만든 거고 저 연주가 이름은 뭐고’ 이런 식으로는 음악을 잘 느낄 수 없죠. 음악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순간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되는 때가 있어요. 연주회장에 옆 사람도 안 보일 정도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죠.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저절로 감식안이 늘어요. 이런 감식안 없이 쓰는 비평은 ‘무병신음(無病呻吟)’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을 읽고서 자기가 느낀 걸 정직하게 써야하는데 그러질 못하니까. 지식만으로 스스로를 과대선전 하면 문학도 없어지고 비평도 없어질 위험이 큽니다”

- 퇴임 후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게 3개가 있어요. 한글, 북벌, 동학. 이 세 가지 속에 담긴 보편성을 찾는 연구를 하려고 하는데 우선 동학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석한 동학연구하고는 다르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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