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근세 초기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도시는 도시 그 이상이었다. 장원제와 가톨릭을 기반으로 한 봉건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곳, 그 공기마저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곳. 합리성과 사상의 자유가 숨쉴 수 있는 곳. 도시는 그들에게 해방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시는 어떨까?

 <서울 생활의 발견>(강수미 외 지음, 현실문화연구)은 미술가, 미술비평가, 도시계획자, 건축비평가, 이미지 비평가 등 다양한 지적 배경을 지닌 8명의 필자가 조명한 서울을 담고 있다. 필자들이 지닌 공통의 문제 의식은 이렇다. '도시미학이나 도시역사 연구의 시각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과 현실에서 출발한 서울 이야기가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도시 이야기, 골목골목의 팍팍한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도시 담론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필자들은 청계천, 종로, 북한산, 인사동, 후암동, 해방촌 등 서울 곳곳의 속살을 사진, 인터뷰, 치밀한 비평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탐험한다. 이 가운데 보신각 맞은편 종로 타워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종로 타워는 마치 혹성에 불시착한 무인 우주기지처럼 종로의 역사에서 뜬금 없이 떠 있다.

 돈이 된다면 역사, 전통, 맥락, 정체성 등은 무엇으로도 대체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의 물신숭배를 강화하는 환상의 랜드마크에 불과하다는 것. 한편 서울의 심리적, 지리적 랜드마크로서 특권을 누리던 북한산은 어떠한가? 북한산의 의미와 기능은 자연 그 자체에서 인공화된 자연으로, 자연의 시뮬라르크로 전이 혹은 전락해가고 있다고 본다.  

 <서울 생활의 발견>이 바로 지금 여기의 서울, 요컨대 공시적 관점에서 서울을 바라본다면, <문학 속 우리도시기행>(김정동 지음, 옛오늘)은 다분히 통시적인 관점을 취한다. 저자 김정동 교수(목원대 건축학)가 소설가들이 묘사한 동시대의 구체적인 장소, 도시, 거리, 건물 풍경을 담았다. 예컨대 나도향의 <환희>에서 우리는 1920년대 종로 거리와 만날 수 있다. '양국인(洋國人)이 세운 남산 밑에 우뚝 서 있는 천주교당이 아주 신성한 땅 위에 천당이나 같아 보였다. 종로 네거리 순사 주재소가 있고, 재판소 앞 대서소 많이 있는 골목을 꿰뚫어 청진동으로 들어간다.'

 그밖에 이광수, 염상섭, 현진건, 최서해, 유진오, 심훈, 이상, 박태원, 김유정, 채만식, 이효석, 김동인, 이미륵 등 모두 24명의 작가가 소설 속에서 그려 낸 도시 풍경을 귀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전해준다. 박완서의 1970년작 <나목>을 통해 저자는 1951년 겨울부터 1953년 초까지 6.25 전쟁이 휩쓸고 있는 서울 거리를 걷는다. 신세계 백화점을 중심으로 명동, 회현동, 을지로, 화신, 계동, 연지동으로 퍼져 나가는 동선이다.

 <나목>에서 작가가 그 주변과 내부를 자세히 묘사한 미군 PX 건물은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이다.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 지점이었고, 해방 후 동화백화점으로 개칭되었다가, 미군정 당국이 메인 PX 시설로 징발해 사용했다. 이후 6.25 전쟁 중에도 미 8군 메인 PX로 사용되었으며, 신세계 백화점으로 개칭된 것은 1963년부터다. 화가 박수근이 초상화부원 4명 중 하나로 그림을 그려 호구지책을 삼던 곳이기도 하다.
 위의 두 권의 책은 오늘날 우리가 터 잡고 살아가는 도시가 문학적,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제라는 점을 두 책 모두 잘 말해 준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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