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손유정 기자 fluff@

강병화 교수(생명대 환경생태공학부)에게는 두 종류의 명함이 있다. 본교의 교장이 있는 명함과 ‘식물계의 공룡’ 가시박 사진이 있는 명함이다. 두 명함은 강 교수가 지난 28년간 열정을 쏟은 교육자와 ‘잡초박사’로서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잡초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학계의 선구자가 된 원동력에 고려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야외 조사 때문에 주 3회꼴로 연구실을 비워도 연구자의 자율성을 인정해준 동료 교수와 강의시간을 조정해주며 여러모로 배려해준 학교 덕에 마음 편히 연구했다. “나는 고려대에 빚진 게 참 많아요. 우수한 학생들 덕에 가르치기 수월했고, 정년퇴임 후 쓸 연구실을 마련할 여유가 없는 저에게 김병철 총장이 자신의 연구실을 내 준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강 교수는 전공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힌 ‘잡초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워 학계의 인정과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8년에는 30여 년간의 연구와 조사를 집대성한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을 완성했다. 이 두껍고 무거운 책은 야생초와 종자 연구에 대한 강 교수의 열정을 함축한다. 씨를 맺는 시기가 종마다 다르기에 강 교수는 야외조사만 3880일을 다녔다. 고대농장만 한 달에 20번 남짓 방문했고, 고향 들판을 수 백 번 뒤지고 다녔다. “갈 때마다 풀 모양이 다르고, 가는 곳마다 찾을 수 있는 종자가 달라요. 기름값만 한 3억 원 들었을 겁니다”

강 교수는 정년퇴임이 임박한 지금도 바쁘게 지낸다. 15만장에 달하는 사진자료를 스캔하고, 냉장고를 가득 채운 종자를 정리하고, 준비하던 논문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 출판하기로 한 책만 4권이고, 여름부터는 한 권짜리 식물도감을 집필할 계획이다. 야외조사는 앞으로도 꾸준히 다닐 것이라는 강 교수는 수십 년간 모아온 종자들을 3월 초 학교에 전부 기증한다. “종자처럼 국가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자원은 학교에 남겨야 가장 오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책과 식물 사진으로 둘러싸인 연구실 한 쪽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가 붙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이 짧은 문구에서 강 교수의 한 평생이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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