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윤형섭 교수
요즘 게임과 웹툰이 기성 세대들로부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게임 때문이다.’‘우리 아이가 폭력적이 된 것도 게임과 웹툰 때문이다.’과연 그럴까?
학교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관련 부서는 애매모호한 대상인 게임과 웹툰을 대상으로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하는가 하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게임으로 지목하고 추가 규제를 하겠다고 밝혔다. 만화 분야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3개 웹툰에 대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하는 등 게임과 웹툰이 마치 학교 폭력의 주범이라도 되는듯 문화콘텐츠에 대해 규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정부의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며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게임이건 만화이건 학계에서 만화와 게임의 폭력성이 청소년들의 폭력성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연구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폭력적인 게임과 청소년의 폭력성간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규제책은 어떤한 근거에 의해 그런 정책들을 입안하는 것일까?

특히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방지해야할 교육과학부는 게임과 학교 폭력의 연관성이 높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 청소년의 평균 게임 이용 시간은 46분인 반면, 핀란드는 10분에 그친다"며, 학교 폭력이 한국에서 심한 이유를 게임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인용된 데이터도 틀렸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지만, 더 큰 문제는 명백한 논리의 오류이다. 게임을 많이 했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많다는 것은 인과관계도 아니며,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핀란드와 비교한다면서 왜 핀란드 학생들의 공부시간과 한국 청소년들의 공부시간을 비교하지 않는가? 그들이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를 얘기하지 않는가? “한국 청소년들의 학습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 따라서 학교 폭력은 학습시간이 길기 때문이다”라고 하면 논리적인가? 이런 부당한 논리로 조잡한 정책을 만들어내면 안된다. 학교 폭력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정부의 저의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우리는 마약제조상’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SNS에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급기야 게임업계의 사람들이 게임의 사회적 편견을 넘어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기 위한 “게임 편견 타파 컨퍼런스”를 자발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 만화가들도 지난달 27일 개최한 만화에 대한 유해매체 지정 공청회에서 1997년에도 학교폭력의 원인을 만화 탓으로 돌리고 탄압했지만, 학교폭력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왜 사회적인 문제를 자꾸 만화 탓으로 돌리는 것인가라며 규제정책의 비합리성을 반박하였다.

만화는 이미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으며, 게임이 주는 장점과 효용성도 계속해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최근 선진국들은 학교 교육의 게임의 재미와 집중력 등의 장점을 활용하는 교육의 게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그저 게임을 악의 축으로만 몰고가고 있다. 이번 정책 입안자들이 “폴드 잇(Fold It)”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게이머들이 3주만에 에이즈와 암 등의 생성에 관여하는 프로테아제 효소의 구조를 밝혀낸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이는 학계에서 1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게이머들의 공간추론 능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결한 사례이다. 이 사례는 온라인 게임의 장점과 게이머들의 잠재적 능력을 집단지성으로 승화시킨 좋은 예이다.

무지에 의한 판단으로 정책을 입안하여 산업과 예술을 탄압하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나마 학교 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시의 절적한 일이지만, 게임과 만화로 그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은 병의 원인도 정확히 모르는 채, 임상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으로 처방하려는 것과 같다. 이제 매체에 대한 편견을 넘어 그 매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활 시기가 왔다. 우리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매체의 표현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믿는 성숙한 정부의 자세가 아쉽다.

윤형섭(가천대 연구교수, 게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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