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오스틴대의 사회학과는 한국의 사회학과와는 상당히 다른 지적 전통을 보였다. 40여명에 달하는 교수 중 과반수 이상이 인구학 센터에 연계되어 있었고, 당시 한국의 사회학계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상당수 있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구학은 소위 인기 있는 사회학 전공 분야이며,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 역시 성장기를 거쳐 전성기로 접어들던 상태였기에 뛰어난 업적을 가진 이 분야의 교수들이 계속 충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학이나 보건학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처음엔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많은 개인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건강이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점차 명백한 깨달음이 되어갔다. 특히 사회 불평등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사회 계층 간 건강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태로 발현되는 불평등의 현실을 연구하는 것이란 점에서 이 영역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때마침 의료 사회학의 대가이신 밀로우스키 박사와 로스 박사가 학과로 초빙되어 오셨고 이 분들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해 또한 학자적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지도교수이셨던 밀로우스키 박사는 로스 박사의 남편으로, 미국의 경우 이처럼 부부가 함께 한 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두 분은 연구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철저한 전문가로서의 학자적 태도를 보여 주셨는데, 사시는 집을 가보니 별다른 가구나 장식도 없이 깔끔한 연구소처럼 꾸며 놓으시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연구에 몰두하시는 삶을 사시는 듯 했다. 미국 대학에서 교수의 연봉은 교수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 두 분은 텍사스 대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으시는 분들이었으나 삶은 매우 간소했고, 하나의 논문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 나 역시 성실한 유학생활을 보냈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유수한 영문저널에 출판하기 위한 노력과 미국 내에서 취업을 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였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결과 유수 저널에 논문도 출판하게 되었고 콜로라도 주립대에 연구교수로 취업도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후회되는 부분은 때때로 조급한 마음을 갖고 무리한 학업 생활로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곤 했던 점이다.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위해선 긴 여정을 꾸준히 즐겁게 갈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마음의 다스림과 균형 있는 삶으로의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여겨진다. 그 한걸음 한걸음의 배움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영 문과대 교수·사회학과